‘두 번 이상 암 진단’ 환자 증가 추세, 새 종류 ‘2차암’ 장애연금 못받고
‘재발-전이암’은 건보특례 적용 안돼
복지부 “적용 기준 다를 수 있어”… 전문가 “불합리한 낡은 기준 손봐야”
A 씨(54·여)는 유방암 진단을 두 번 받았다. 2018년 5월 오른쪽 가슴, 2020년 1월 왼쪽 가슴을 떼어냈다. 첫 번째는 완치율이 높은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었지만, 두 번째는 치료가 어려운 삼중음성 유방암으로 종류가 다른 암이었다.
A 씨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장애를 입었을 때 받을 수 있는 장애연금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첫 번째 암이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재발·전이암’ 환자는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 씨처럼 새로운 종류의 ‘2차암’에 걸리면 말기에야 지급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A 씨는 “생계가 막막한 지금이 암 수술 때보다 더 괴롭다”고 말했다.
○ “두 번 암 걸린 것도 힘든데” 환자 혼란
암 생존율이 높아지고 기대수명이 늘면서 일생에 두 번 이상 암 진단을 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된 암인지, 아니면 새로운 2차암인지에 따라 지원이 제각각이라 환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12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2017년 국내에서 암 진단을 받은 22만7225명 중 1만6612명(7.3%)이 2번 이상 암 진단을 받았다.
두 번째 암에 걸린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대표적인 지원 규정이 장애연금이다. 국민연금 장애심사 규정에 따르면 새로운 ‘2차암’에 걸린 환자는 △더 이상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고 항상 도움이 필요하며 종일 누워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처음 걸린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된 경우 거동할 수 있어도 중증으로 판단하고 장애연금을 지급한다.
반대로 건강보험공단이 5년 동안 암 환자 본인부담금을 줄여 주는 ‘중증질환 산정특례’는 재발·전이암 환자에게 불리하다. 암을 한 번 진단받은 데 이어 새로운 ‘2차암’에 걸리면 두 번째 암 진단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이 다시 줄어든다. 그러나 같은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된 경우 1차암 진단일 기준 진료비 지원은 5년만 적용된다. 2014년 6월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은 B 씨(51·여)는 2018년 4월 암이 직장(直腸)으로 전이됐지만 진료비 지원이 2019년 6월 끊겼다. B 씨는 “전이암도 장기간 추적 관찰이 똑같아 진료비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 “행정적 구분보다 환자 입장 고려해야”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적용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장애연금은 장애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한 제도로 암이 진행되는 재발이나 전이를 중증으로 본다. 건강보험 산정특례는 암 발생 직후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목적에 맞게 새로운 2차암 지원을 우선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암 전이 여부에 따라 일괄적으로 지원을 나누는 게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새롭게 발생한 2차암을 재발·전이암보다 가볍게 보는 건 2차암이 드물던 시기에 만든 ‘낡은 기준’이라는 얘기다. 한원식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2차암도 치료 난도와 재발 위험이 전이암 못지않게 큰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산정특례를 통한 치료비 지원 역시 환자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암 재발은 전쟁에 비유하면 폐허가 된 나라가 또다시 침략당하는 것”이라며 “누가 침략했는지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앞으로 두 번 이상 암에 걸리는 환자가 늘 수밖에 없는 만큼 기준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