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생활을 하다 보니 작은 차이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디테일을 캐치해 의뢰인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해주며 국민들에게 봉사할 계획입니다.”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평산 사무실에서 만난 최한돈 대표변호사(57·사법연수원 28기)는 23년 간 판사로 근무하다 올 2월 법원을 떠나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소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8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최 변호사는 1996년 사법시험 38회에 합격한 뒤 1999년 울산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장 주재로 사법부 행정을 최종 결정하는 회의인 사법행정자문회의 위원으로 2019년 9월부터 2년 간 활동한 최 변호사가 판사직을 내려놓자 법원 안팎에서도 화제가 됐다. 최 변호사는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현안 조사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추가 조사를 승인하지 않자 2017년 7월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부의장을 맡아 일선 판사들의 최고 회의체를 이끌었다.
이 때문에 법원 내부에서는 최 변호사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가장 신임하는 판사 중 한 명”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가정법원에서 근무하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간의 이혼소송 사건 재판장을 맡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법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최 변호사는 이달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을 떠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변호사 생활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갑작스레 법원을 떠난 이유는.
“법관이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오래 있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해 업무가 벅차다는 느낌을 받았다.특히 체력적으로 벅찼다. 새벽 5시, 7시에 퇴근한 뒤 샤워만 하고 다시 출근해 재판을 하는 일이 반복되자 건강이 악화됐다. 법원을 떠난다고 하니 동기, 선후배 판사님들이 많이 만류하셨는데 그분들께는 죄송하기 짝이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이혼소송의 부담이 컸나.
“그 사건이 힘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 사건을 맡았을 때 가정법원에서 근무하는 2년 동안 결론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난해 사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로는 새 재판장이 결론을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조급증을 버렸다.”
―건강은 회복됐나.
“많이 나아졌다. 판사 생활에서 오는 정신적인 압박감이었던 것 같다.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는 신속히 판결이 나와야 하는데, 법원에 사건이 너무 많다. 이게 굉장히 부담이었다.”
―보람도 많았을 텐데.
“물론이다. 어려운 재판을 심리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았다. 특히 작은 차이가 소송의 결론을 바꿀 때, 세밀한 법리를 찾아냈을 때 그렇다. 춘천지법 항소부에서 근무할 때 피해자 유족이 춘천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중 큰 트럭이 지나가며 피해자가 2, 3m정도 굴러 떨어졌다. 피해자는 사망했고 유족들은 춘천시의 도로 관리 실태를 지적하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은 피해자가 법에 정해진 규정을 모두 지켜서 자전거를 탔다면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장을 맡아 사건을 살펴보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모든 사람이 법을 면밀히 공부해서 적법한 행위만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법을 잘 모르는 국민들의 생명과 신체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시설을 설치했어야 했다. 피해자 측 손을 들어줬고 춘천시가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작은 차이가 소송의 결과를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형사부에서 근무하며 대리성형수술 사건을 맡았다. 피해자는 성형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줄 알고 상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치과의사가 수술을 한 부분이 있었다. 피고인 의사들은 ‘협의 진료’, 즉 ‘협진’이기 때문에 정당한 수술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협의 진료는 서로 다른 전문분야의 의사들이 합심해서 진료나 치료 방법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고, 대리수술은 역할분담을 한 협업에 가깝다. 환자에게 미리 고지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피해자의 억울한 사정을 충분히 듣고 정확한 법리를 적용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거나 사회를 향해 어떤 행위 기준을 정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니 다른 점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판사로 일할 때는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와 피고가 주장하는 범위 내에서 판단한다. 형사재판도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의 범위 내에서 유무죄를 판단한다. 판사가 그 범위를 넘어서서 새로운 주장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플레이어’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칠 수 있다. 판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 제시하고 의뢰인의 입장에 맞춰 심도 있는 법률적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변호사로서 소송 준비하는 것은 어떤가.
“일반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법원도 좀 더 국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당사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수 있다.”
―판사가 모든 이야기를 다 듣기에는 사건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재판도 지연되고.
“법원에 닥친 가장 큰 문제다. 사건을 심도 있게 심리하는 것과,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줘야 하는 것이 충돌한다.” ―해결책이 있나.
“판사 증원이 시급하다. 사건은 점점 많아지고, 사건 구조는 복잡해져서 심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재판은 길어진다. 그렇다고 판사가 대충 심리해서 빨리 판결을 내릴 수도 없다. 민사 사건 같은 경우 원칙적으로 ‘전면 단독화’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 명의 판사로 이뤄진 재판부인 ‘합의부’보다 한 명의 판사가 있는 재판부인 ‘단독부’가 많아지면 간접적으로 판사 증원 효과가 있다.”
―법무법인 평산을 택한 이유는.
“평산에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오래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다가 들어온 변호사들이 많다. 중요한 건 이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면 경력이 낮은 ‘어쏘 변호사(Associate Lawyer)’에게 실무를 맡기고 적당히 조언만 하는 식으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는다. 경력이 탄탄한 전관 변호사들이 사건을 직접 검토하고 의견서를 쓰고 법정에 출석하니 성과도 좋다. 누군가에게 맡겨 놓는 것보다 내가 직접 의뢰인과 이야기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게 더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로서 어떤 분야에 특화할 계획인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곳이 서울가정법원이라 가사, 상속 사건은 특화됐다. 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항소부에 근무하며 의료 관련 형사 사건 등을 맡은 경험 때문에 형사 사건도 익숙하다. 춘천지법 초임 부장판사로 일할 때는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도시 개발 사건을 수임했는데 판사 시절 도산이나 행정 사건을 맡았던 것이 행정에 대한 공부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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