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경기 오산시의 한 야산에서 암매장된 시신 한 구가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당초 수사팀은 2019년 초 매장이 이뤄졌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유골과 함께 묻힌 곤충 사체 분석 결과는 달랐다. 번데기로 발견된 검정뺨금파리, 큰검정파리, 떠돌이쉬파리 등 3종류 곤충은 산란기가 모두 10월이었다.
이에 따라 수사팀은 시신이 적어도 2018년 10월 이전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 범위를 넓혔고, 그 결과 용의자를 포착했다. 범인을 잡고 보니 암매장은 실제 2018년 9월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 현장의 곤충을 분석해 사망 시점 등을 밝혀내는 법곤충학의 힘을 알 수 있는 사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법곤충 감정을 본격 도입하기 위해 충남 아산시 경찰수사연수원에 ‘법곤충감정실(Forensic Entomology Lab)’을 최근 개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사망 시점은 변사사건에서 사인(死因) 및 범죄 관련 여부를 파악하는 중요 단서다. 통상 체온 하강, 시신 얼룩(시반), 시신 경직(시강), 위 내용물 소화 상태 등을 종합해 추정한다. 그러나 시신이 오래돼 부패하면 이 방법으로는 추정이 쉽지 않다.
법곤충 감정이 이때 큰 도움이 된다. 철마다 활동하는 곤충이 다르다는 점을 활용해 사망 계절이나 월을 추정할 수 있고, 사체에 꼬이는 곤충이 기온에 따라 일정하게 성장한다는 특성을 활용하면 1~3일 단위까지도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있다. 법곤충 감정은 미국, 유럽 등에서는 1990년대 이후 주요 수사기관, 법과학연구소에서 널리 활용된다. 방임이나 동물 학대 등의 범죄 수사에도 구더기증(승저증) 분석이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2014년 순천에서 발견된 A 씨 변사 사건에 법곤충 감정이 최초로 적용됐다. 그러나 전담 감정실이 없고, 전문 연구 인력도 부족해 이후 제한적으로만 활용돼 왔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고려대 법의학교실과 함께 사체에 잘 꼬이는 국내 서식 파리 3종의 성장 데이터를 구축해왔다. 이날 법곤충감정실 개소식에 참석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법곤충감정 기법을 향상시켜 변사 사건을 과학적 방법으로 더욱 세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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