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년들은 적절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누리고 있나[정신건강 대전환기, 우리 사회의 길을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8일 15시 26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로 악명이 높은 한국이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우울증 1위’라는 발표가 있었다. 우울, 불안 등의 흔한 정신건강의 문제는 청년기에 대부분 시작된다. 우리나라 10~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자살은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출산과 결혼이 감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현대인은 일생을 살며 평균적으로 4명 중 1명이 정신과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선진국은 이런 사람들 중 절반만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게 사회적 문제라 보고 관련 장관직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이용률이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20%대에 머무르고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보험 문제 등을 떠올리며 혹시나 불이익은 당하지 않을까 하며 주저하게 된다. 다른 연령대보다도 청년층의 이용률이 더 낮은 상황이라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된다.

주요 정신건강 문제들은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진로, 가족, 대인관계 등의 복잡한 문제들은 약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은 정신건강에 1달러를 투자하면 건강과 경제적 혜택을 4달러 얻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다. 청년의 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가장 왕성하게 인생의 토대를 만들어갈 시기를 낭비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1만10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는 정신과 의사 12명을 포함한 34명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구성원의 21%가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MIT 학생들이 유독 정신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일을 빠르게 해내려 뇌를 많이 써 발생한 피로일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근육과 관절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높은 우울증과 자살률은 가난한 식민지 국가에서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생긴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하느라 뇌에 큰 부담이 생겼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간단한 해결책이 없다. 약물은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것을 해낼 수 있도록 강력한 도움을 주지만, 평소에 가졌던 잘못된 대처방식을 바꿔주지는 못한다. 건강한 정신을 가지려면 심리적인 부분 뿐 아니라 식사, 운동, 수면과 같은 신체적인 건강도 기본이 되어야 한다. 또 대인관계 등 사회적인 면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운동선수가 부상 후에 수술도 받고 약도 먹지만 재발을 막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MIT 학생 수와 MIT 학내 정신과 의사 비율을 우리나라에 대입한다면 정신과 의사만 6만 명이 필요하다. 현실은 전체 정신과 의사가 4000여 명에 불과하다.

2002~2015년 미국 국립정신보건연구원을 이끌었던 토마스 인셀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기술을 주목한다. 그는 뇌과학과 약물연구에 큰 혁신이 있었지만, 일반 대중의 정신건강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점을 안타까워했다. 또 디지털 기술이 그동안 부족했던 서비스를 혁신할 것으로 기대했다.

인셀은 기존의 정신건강 시스템이 효율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돈이 많다면 시간당 수 십 만원의 비용이 드는 프로이드 정신분석을 주 4~5회 받으며 몇 년을 기다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가 없어도 자신의 발전을 위해 분석을 받기도 한다. 지금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적절한 서비스를 일반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다.

채널A 예능인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로 유명한 오은영 선생님은 더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방송에 출연한다고 한다. 방송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신과에 가면 약만 준다는 불만이 있어 왔다. 다행히 2018년부터 면담시간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조금 나아졌다. 지방에도 예약제 정신과가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기계적인 행정 소요를 줄이고, 개인을 맞춤형으로 잘 평가하고, 환자에게 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가능해지도록 디지털 기술이 개발되면 어떨까.

전문가는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이용자는 더 편하고 쉽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통신, 유통, 금융에서 보았던 디지털 혁신들이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예전에는 전자상가에서 발품을 팔아 가격과 정보를 비교하며 구입했던 물건을 지금은 몇 번의 클릭으로 쉽게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신건강의 특징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컴퓨터로 치면 프린터에 오류가 났을 때 종이가 걸렸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연산 자체가 엉켜 느려지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디지털 기술들이 나의 행동 패턴에서 내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을 파악한다면, 그리고 해결책을 오은영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알려준다면 어떨까. 완벽하게 인간 의사를 대신할 정도의 기술은 너무 먼 이야기이지만 적당히 쓸 만한 기술이 있다면 기존 서비스로 쉽고 빠르게 연결되어 안타까운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가장 필요하고 또 이런 변화를 일으킬 능력이 있는 기술강국 대한민국에서 혁신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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