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김모 씨, 1993년 복수심에 중국 공안 살해 후 도피 생활 이어가
한족으로 신분세탁, 위조여권으로 2012년 한국 들어와 일용직 전전
유전자 검사로 어머니 친자 인정받아 한국 국적 취득하기도
경찰, 공안 요청으로 2019년 체포…추방 금지 행정심판에 2년 6개월 소요
‘한 명 보내면 한 명 받는다’ 국제 공조수사 원칙 따라 향후 중국 도피사범 송환 기대
29년 전 중국 공안을 살해한 뒤 한국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된 중국인 김모 씨(49)가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송환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조선족인 김 씨는 1993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공안을 살해한 뒤 신분을 세탁해 2012년 국내 입국했다. 김 씨에 대한 체포 요청을 받은 경찰은 2019년 그를 검거했다.
중국에선 공안 살해범의 경우 사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중국 송환을 피하기 위해 국내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김 씨는 범죄를 저지른 지 29년 만에 중국 공안에 넘겨지면서 도피 생활의 막을 내렸다. 중국 공안청은 이례적으로 전세기를 마련하고 대규모 인원을 파견하는 등 김 씨 송환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 복수심에 살인…신분세탁 후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까지 취득하며 도피
사건의 발단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남부경찰청 인터폴 국제공조팀에 따르면 김 씨는 1989년 중국 하얼빈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공안 A 씨에게 붙잡혀 현지 감옥에서 약 3년여를 복역했다. 자신을 체포한 것에 원한을 품은 김 씨는 1993년 출소하자 그해 11월 A 씨의 집으로 찾아가 흉기로 A 씨를 살해했다.
김 씨는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한족 왕 씨로 신분을 세탁했으며,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도 낳으며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공안 당국의 추적의 두려웠던 김 씨는 왕 씨 명의로 발급받은 여권으로 2012년 4월 한국에 입국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 생활 중이었던 어머니에게 의지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대전, 제주 등의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014년엔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도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귀화는 △친부나 친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자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해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 등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 국적자이던 어머니의 친자인 점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한국 국적은 허위 신분으로 취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중에 박탈됐다.
● 체포부터 행정재판 거쳐 2년 6개월 만에 송환
한국으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중국 내 공항 폐쇄회로(CC)TV에 찍힌 김 씨의 사진이 추적의 단서가 됐다. 김 씨가 한국으로 출국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중국 공안은 한국 경찰에 김 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을 요청했다. 통상 한국에서 90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의 경우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얼굴 사진을 등록해 보관한다. 중국 공안은 안면인식기술을 통해 왕 씨가 신분을 세탁한 채 한국에 입국한 김 씨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리 경찰에 전해왔다.
경기남부경찰청 인터폴 국제공조팀은 이를 토대로 김 씨의 소재지 및 신원 파악에 나섰다. 경찰 조사결과 당시 제주 서귀포시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왕 씨가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도피한 김 씨라는 점이 확인했다. 경찰은 2019년 11월 김 씨를 현장에서 체포해 대전출입국외국인사무소로 넘겼다. 김 씨는 조사에서 공안 살해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김 씨가 국내 입국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한 혐의 등을 적용해 그를 중국으로 추방하려 했으나 즉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씨가 강제퇴거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안 살해범은 통상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김 씨는 어떻게 해서든 송환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대법원이 심리불속행기각 판결을 내리며 김 씨는 끝내 중국 땅을 밟게 됐다.
● ‘한 명을 보내면 한 명을 받는다’ 국제공조 수사 원칙
국제공조 수사에는 ‘한 명을 보내면 한 명을 받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범죄자를 잡는다’는 대원칙엔 각국 경찰이 모두 동의하지만 해외 도피사범을 검거하는 건 꽤나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국의 요청을 받고 붙잡아 송환하는 이가 있어야 나중에 상대국에서 도피 중인 범죄자도 검거를 요청해 넘겨달라고 할 수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인터폴 국제공조팀 관계자는 “오랜 세월 도피를 이어가던 범죄자를 잡아 본국으로 돌려보내면서 향후 중국에서 도피 중인 한국인 범죄자를 데려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중국 공안도 이번 범죄자 송환에 공을 들였다. 김 씨 송환을 위해 이례적으로 전세기를 띄우고 공안 7명을 파견했다. 통상 송환 절차에는 공안이 2~3명 파견된다. 이는 중국 공안이 그만큼 공안 살해 범죄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재작년, 작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국제 공조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팬데믹이 완화하면서 송환자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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