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음식도 물가 급등 직격탄…서민들 “이제 뭘 사먹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24일 20시 09분


뉴스1
“땅콩도 이젠 못 드려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5번 출구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모 씨(42)는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기본 안주로 내던 땅콩과 진미채를 지난달부터 내지 못하고 있다. 안주 값은 7000원씩을 유지하고 있지만 양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렸다. 최근 재료값이 크게 오른 탓에 그대로는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박 씨는 “‘예전엔 접시에 불룩하게 담아주더니 요샌 조금만 준다’고 불평하는 손님이 꽤 계시다”며 “많이 드리지 못해 나도 속상하다”고 했다. 손님 우민우 씨(35)는 “이 동네는 값도 싸고 양도 많아 친구들과 10년 가까이 찾고 있는데, 요즘은 좀 아쉽다”고 했다.


● “재료 값 두 배 돼 별 수 없어”
최근 물가 급등의 여파가 서민이 주로 즐기는 노점 음식이나 저렴했던 술안주마저 직격하고 있다.

탑골공원을 들른 어르신이나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청년들이 요기와 술추렴을 하는 종로구 ‘송해길’(육의전빌딩~낙원상가) 일대 노점과 식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격이 착한’ 것으로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이 일대 가게에서는 5000원이면 넉넉하게 배를 채울 수 있고, 1만 원 짜리 한 장이면 소주 한 병에 안주를 두 개까지도 곁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기자가 방문한 종로3가역 인근 노점 15곳 중 9곳은 재료 값 인상 탓에 최근 3개월 내 음식값 또는 술값을 올렸다고 했다. 떡볶이와 호떡, 닭꼬치 등 음식값은 적게는 500원에서 많게는 3000원까지 올랐다. 도넛을 파는 노점상 정동하 씨(65)도 원가 인상 탓에 2008년 이래 2개 1000원에 팔던 도넛 값을 지난달부터 3개에 2000원으로 올렸다.

식당, 주점도 마찬가지였다. 주점 ‘고향집’ 주인 박모 씨(55)는 지난주 부추전 값을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리는 등 안주 가격을 각각 1000~2000원씩 올렸다. 박 씨는 “재료값 상승으로 도무지 이윤이 남질 않아 어쩔 수 없었다”며 “오른 가격을 듣고 주문을 취소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국밥집 주인 이규복 씨(68)는 “일곱 달 전에 국밥 가격을 6000원으로 1000원 올렸는데, 더 올려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 “여기마저 오르면 어디서 즐기나”
특히 밀가루와 식용유 값 상승 영향이 컸다. 도넛을 파는 정 씨는 “작년까지 2.5kg에 2800원 하던 밀가루 한 포대가 요즘 4500원씩 하고, 다른 재료비도 대체로 2배 가까이로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20년간 분식을 팔아온 노점상 정양님 씨(69)는 “18L 식용유 한 통이 작년 3만5000원이었는데, 요즘 6만 원”이라며 “물가가 올라 상인은 상인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힘들다”라고 했다. 정 씨는 3월부터 떡볶이 1인분 값을 40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단골들은 울상이다. 종로구에 사는 양제규 씨(67)는 “포장마차에서 한 병에 2500원 하던 소주가 3000원이 됐다”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손님에겐 500원, 1000원도 큰 차이다 보니 요즘 불평들이 많다”고 했다. 가끔 지하철로 이 동네 노점을 찾는 것이 낙이라는 A 씨(78·서울 양천구)는 “요즘 포장마차 음식값이 모두 올라 전에는 2개씩 시키던 안주를 1개만 시키고 있다”며 “돈 없는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계속 올 수 있을까 싶다”고 했다.

이날 한 노점상에서 술을 마시던 한 노인은 주인이 안주 값을 올릴 생각이라고 하자 “지금도 비싼데 더 오르면 못 사먹는다. 여기마저 오르면 대체 어디 가서 사먹느냐”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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