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법원, 전자발찌 청구도 기각… 지난달 비아그라 먹고 아동 성폭행
법조계 “신상 알리고 발찌 찼으면, 범죄예방-범행억제 가능했을것”
“아이를 성폭행했다니요. 내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귀가 중이던 11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A 씨(83)는 지난달 27일 체포 직후 이같이 성폭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고령이어서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범행을 의심할 증거는 속속 발견됐다. A 씨가 체포 당시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갖고 있었던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었다.
검사는 A 씨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사는 “A 씨의 혈액과 소변을 채취한 뒤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해 달라”고 경찰에 지휘했다. 예상대로 혈액과 소변에선 발기부전 치료제의 성분이 나왔다. A 씨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2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손정숙)는 24일 간음 약취와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A 씨를 구속 기소했다. A 씨는 지난달 27일 경기 소재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피해 아동에게 “예쁘다. 할아버지 집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유인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아동을 성추행한 전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심 법원은 초등학생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80세 고령이고,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생활했으며, 범죄 전력이 없다”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나이와 사회적 유대관계를 고려하면 신상정보를 공개하면 안 될 사정이 있다”며 신상정보 공개 의무도 면제해줬다.
하지만 몇 달 뒤 A 씨는 버스 안에서 초등학생의 허벅지를 만진 혐의로 또다시 기소됐다.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법원은 4000만 원의 벌금형으로 선처했고 신상정보를 공개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추행의 정도도 가볍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두 차례 이상 성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에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해야 한다”고 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앞선 두 차례 추행 당시 A 씨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전자발찌를 부착시켰다면 범죄 예방과 범행 억제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 부착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의 전자발찌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되는 비율은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6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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