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타고 축구장 203개 면적 번져… 소방당국, 23시간만에 큰 불길 잡아
보광사 등 9동 불타… 인명피해 없어 공사장 용접 불꽃 튀어 발화 추정
긴급대피 주민 “농기계 창고 불타”… 尹대통령 “신속한 일상 복귀 지원”
29일 산림청 헬기가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일대 산불을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산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올 3월에
이어 28일 오후 울진군에 다시 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절반 면적(145㏊)의 산림을 태우고 23시간 34분 만인 29일 오전
11시 40분경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주민 44명이 대피했으며 보광사 대웅전 등 건물 9동이 피해를 입었다. 산림청 제공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황망한 일은 처음이에요.”
29일 오후 3시경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남1리 자택에서 만난 최정옥 씨(89·여)는 흔적만 남은 창고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글썽였다. 최 씨는 “어제 오후 2시 반경 이웃으로부터 전화가 와 ‘빨리 대피하라’고 하더라. 무슨 일인가 나와 보니 (집) 뒷산에서 큰불이 넘어오고 있었다”며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시집와 70여 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불길이) 우리 집을 금방이라도 삼킬 것만 같았다”고 했다.
○ 다시 화마(火魔)가 집어삼킨 울진
올해 3월 4∼13일 역대급 산불이 여의도 면적(290ha)의 56배(1만6302ha)를 집어삼킨 경북 울진에서 28일 오후 또다시 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면적의 절반(145ha)에 해당하는 산림을 태우고 29일 오전 진화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 44명이 긴급 대피하고 주택 창고 등 9동이 전소되거나 일부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28일 낮 12시 6분경 근남면 행곡리 야산에서 시작된 불은 초속 20m 안팎의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축구장(7140m²) 203개 면적에 해당하는 대형 산불로 번졌다. 산림당국은 최고 단계인 산불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섰다.
발만 동동 구르던 최 씨는 이웃 도움을 받아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울진국민체육센터로 대피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최 씨는 “혼자 사는데 이웃이 전화를 안 해줬다면 집에서 화를 당했을 것”이라면서 “29일 집에 와 보니 농기계 등을 넣어뒀던 창고가 모두 불탔다. 그나마 집은 지켰지만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겼다”며 망연자실했다.
동아일보가 이날 읍남1리를 둘러본 결과 매캐한 냄새가 종일 마을을 뒤덮었고, 산불에 타고 남은 재가 여전히 하늘을 날아다녔다. 최초 발화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약 2km 떨어진 이 마을은 최 씨 창고를 비롯해 사찰인 보광사 대웅전과 별채, 마을 입구의 차량정비소 등 건물 7동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등 산불 피해가 집중됐다. 임정승 읍남1리 이장(52)은 “얼마 전 울진에 큰불이 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며 “순식간에 마을까지 번지는 산불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 산림청 “공사장 용접 불꽃 원인 추정”
최근 건조한 날씨로 나무가 바싹 마른 데다 초속 20m를 넘나드는 강풍이 몰아치면서 산림당국은 조기 진화에 애를 먹었다. 산림청과 소방청은 헬기 36대와 진화대원 1510명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고, 화재 발생 23시간 34분 만인 29일 오전 11시 40분경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인근에 있던 천연기념물 96호 수산리 굴참나무(수령 300년)와 천연기념물 409호 행복리 처진소나무(수령 350년)도 다행히 무사했으며 불에 탄 보광사 건물들도 문화재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산림당국은 행곡리 인근 도로 낙석방지 철망 공사장에서 용접을 하다가 튄 불꽃이 산불로 번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산불은 산림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5월에 발생한 대형산불 4건 중 가장 늦은 시기에 발생한 산불로 기록됐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전국에 산불 상황이 많지 않아 헬기와 인력을 집중 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며 “행정안전부 장관은 피해 주민들이 신속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인선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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