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줌인]
해외 본거지 탓 ‘배달사고’ 빈번하자
배신자 신상정보 경찰에 넘겨 응징
경찰 “범죄자 검거해도 웃지 못해”
보이스피싱 조직의 제보로 말단 수거책이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중간에 돈을 빼돌린 수거책에게 피싱 조직이 신고로 보복하는 것인데, 해외에 있는 조직 간부급 검거로는 이어지지 않아 경찰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보이스피싱에 속은 A 씨는 300만 원을 수거책에게 건네고 얼마 후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에는 “당신의 돈을 가로챈 사람”이라는 글에 20대 남성 김모 씨의 신분증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A 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수거책 김 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로부터 건네받은 돈을 김 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달하지 않고 빼돌려 달아나자 피싱 조직이 김 씨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해 신상정보를 공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메시지를 보낸 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간부로 추정되지만 대포폰을 써 신원이나 소재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수거책이 피해자로부터 건네받은 현금 2000만 원을 갖고 달아나자 피싱 조직이 피해자에게 수거책의 신분증 사진을 보내 경찰에 붙잡히게 한 것. 경찰 관계자는 “피싱 조직의 본거지가 해외에 있다 보니 한국으로 잡으러 오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이용해 수거책이 돈을 빼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조직이 보복을 위해 수거책을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배신’한 수거책의 정보를 경찰에 넘기는 것은 이들이 검거되더라도 중국이나 필리핀 등에 있는 조직 본부에는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경찰 관계자는 “수거책은 조직 입장에서도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같은 존재”라며 “점조직 형태인 보이스피싱 조직 특성상 말단을 통해 윗선을 잡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보이스피싱 조직의 ‘복수’에 경찰이 이용당하는 셈이라 경찰로서도 민망한 상황이다. 한 경찰은 “제보의 출처를 불문하고 범죄자를 잡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웃지 못할 상황인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평범한 아르바이트 자리로 가장해 수거책을 모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인 공고에 정확한 업무 내용 없이 ‘고액 아르바이트’라고 밝힌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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