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 재유행을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빠르면 여름부터 확진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해 겨울 혹은 내년 상반기에 다시 재유행의 정점이 찾아올 수 있고, 시기가 늦어질수록 여파는 더욱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우리 정부도 하반기 재유행 규모를 10만~20만명 정도로 예측하면서 코로나19 치료제 구입비 약 8300억원을 포함한 질병관리청 소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4조9083억원을 확정했다.
그러나 재유행 발생 규모, 백신 접종 계획 등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없는 등 대비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 올 겨울~내년 상반기 재유행 전망
전문가들은 재유행 정점의 시기를 올 겨울로 보고 있다. 백신 접종 혹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형성된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환경적으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 겨울에 재유행을 피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겨울철에 재유행 가능성이 높다”며 “모든 호흡기 바이러스는 겨울에 유행하는데, 인체의 방어력이 약해지면서 바이러스 침투가 강해지는 환경적 요인이 만들어져서다. 또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인공면역 혹은 자연면역이 올 가을까지는 어느 정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하반기 재유행을 예상하는 4가지 이유 중 첫 번째는 변이 바이러스, 즉 원인 바이러스의 불씨가 있어서다”며 “뉴욕주에서 처음 보고된 BA.2.12.1 변이, 아프리카 우세종 된 BA.4·BA.5가 여러 지역에서 확진자 반등을 일으켰고 전염력도 10~25% 빠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번째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완화됐고, 세 번째는 백신 접종 혹은 감염 후 생긴 면역의 항체가(抗體價)가 감소했다는 것이다”며 “이 같은 요인이 개별적으론 크게 위협적이지 않으나 오는 6~7월에는 결과물이 겹쳐져 확진자가 반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겨울을 재유행의 정점으로 우려했다. 김 교수는 “여름에 확진자가 반등하겠지만 크게 유행하진 않을 것이다”며 “하지만 겨울은 바이러스가 유행할 환경적 요인이 조성되는 데다 파이 변이 등 새로운 특성의 변이가 발현된다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재유행 시기가 늦어질수록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정 교수는 “재유행 시기와 규모를 특정할 순 없지만 올 하반기에서 늦으면 내년 상반기까지 큰 규모의 유행이 한 번 있을 수 있다”며 “만약 여름에 재유행된다면 국민의 면역 수준이 아직 높아서 피해가 크지 않을테지만 시기가 미뤄질수록 유행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가을 부스터샷 접종 권고…국내, 치료제 구입 등 추경 확정
재유행을 대비해 미국 정부는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있다. 여름휴가 기간 중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할 것으로 전망해 미국 전역에서 팍스로비드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추가 조치를 발표했다.
영국은 방역 자문기구인 백신접종면역공동위원회(JCVI)가 올 겨울 감염 위협을 우려하며 가을에 취약계층 2500만명 부스터샷 접종을 촉구하는 권고를 냈다.
우리 정부도 지난 29일 코로나19 치료제 추가 구입비 약 8300억원을 포함한 질병관리청 소관 추경 4조9083억원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코로나19 치료제 구입(7868억원) ▲예방용 항체치료제 2만회분 구입(396억원) ▲항체치료제(38억원) ▲후유증 조사연구(55억원) 등 코로나19 치료제 추가 구매에 약 8300억원이 투입된다. 치료제 예산(7868억원)으론 먹는 치료제 100만회분, 주사용 5만명분을 추가 구매할 예정이다. 또 396억원은 그동안 면역저하자 보호를 위해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던 ‘이부실드’ 2만회분 신규 구매에 쓰일 예정이다.
◆“과학적 대비책 미진…먹는 치료제 처방 시스템 개선 필요”
하지만 유행 발생 규모, 백신 접종 대상·시기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없고 세부 계획도 잡히지 않는 등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먹는 치료제의 의료현장 처방이 원활하지 않아 구입한 치료제가 남아도는 문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면역력 감소 시점에 얼마나 항체가가 떨어지는지 파악해서 재유행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며 “확진자, 백신 3~4차 접종자들의 중화항체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나아가 항체가 떨어지는 속도 등을 피검사로 밝혀내 이를 토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 역시 “대응이 아닌 대비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사회·경제와 국민 일상을 깨지 않으면서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백신 접종이라고 본다. 영국은 이미 올 가을 접종대상을 잠정적으로 지정했지만 우린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꼬집었다. 백신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해 접종 대상을 정하고, 기존 백신·오미크론 전용·2가 백신 중 어떤 백신을 접종할지에 대해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먹는 치료제 처방 시스템의 개선도 촉구했다. 먹는 치료제의 수요가 컸음에도 처방이 제한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의료시스템 때문에 치료제가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봤다.
김 교수는 “팍스로비드는 12세 이상에 처방할 수 있도록 허가됐지만 60세 이상 등 사용을 제한하면서 초기에 처방이 이뤄지지 않았고, 필요한 사람에 적시에 사용되지 못했다”며 “또 오미크론 확산으로 급하게 진료 병의원을 확대하면서 의료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처방 역시 적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 겨울에는 감염관리 시설을 안전하게 갖춘 코로나 전담 500~1000개 의료기관을 지정한 후 의료진 교육을 충분히 해서 적절한 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약은 의료기관에 비치하거나 바로 옆 약국을 지정해 즉각적인 공급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종합병원에 다 오픈시키는 것도 코로나 치료제의 전문적인 처방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이다”며 “고가의 약이 남발되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적 보완만 한다면 필요한 환자에 적기 처방이 가능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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