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가운데 1위인 자살률을 낮추려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병·의원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들을 대상으로 우울감·자살 문진체계를 구축해 자살 고위험군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과 홍콩에서 정신과 교수로 활동 중인 시우아 탕(Siu Wa Tang) 교수는 지난 29일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가 전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첫 개최한 ‘우울증 치료와 자살예방 교육 심포지엄’에서 ‘자살위험 진단과 예방 특별강연’을 통해 한국은 미국에 비해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체계가 열악하다고 밝혔다.
탕 교수는 “미국에서는 전문과에 상관없이 병의원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의무적으로 우울감과 자살생각 여부에 대답하게 돼 있다”면서 “이때 우울감 또는 자살 생각이 있는 환자가 발견되면 바로 우울증과 자살 위험성을 평가해 적절한 조치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한국의 경우 의사 90% 이상이 환자가 병의원을 방문할 때 우울감과 자살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경우 병의원을 방문하는 환자에서 자살 생각이 발견되면 예방조치가 얼마나 긴급한지, 좋아지길 기다려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해 대책을 결정해야 한다“며 ”또 자살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다른 사람을 해칠 의도가 있는지 꼭 물어보게 돼 있다. 예를 들어 가족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다던지, 가족을 두고 혼자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교수(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 회장)는 우울증의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해 최근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치매, 만성피로, 통증 환자에 대한 우울증 진단과 치료에 대해 발표했다. 이은아 해븐리병원 원장은 우울증이 있는 치매 환자에게 항우울제(SSRI)를 처방한 결과 우울증이 개선됐을 뿐 아니라 기억력 등 인지 기능도 크게 향상된 사례를 공유했다.
임태성 임태성신경과의원 원장은 국내에서 정신과 진료를 보면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건강보험을 제외한 실손보험, 생명보험 등 다른 보험 가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울증 치료를 방해하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울증은 치료가 잘 되고 있거나 치료가 종결된 경우 보험 가입에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치료가 필요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유병률은 10~20%로 5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우울증 치료율을 높이려면 정부가 보험회사들과 협의해 빠른 시일 내 우울증 환자의 사보험 가입 불이익을 없애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회장은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는 자살을 예방하면 타인을 해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면서 “미국과 같이 한국도 병의원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우울감과 자살 생각을 물어보는 진료 체계를 빨리 구축하고, 이를 통해 발견되는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국가 관리 시스템을 만들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소아청소년과, 정신건강의학과, 산부인과, 마취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20개 진료과목 의사 7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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