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9시경 경남 밀양시 부북면 해발 538m 옥교산 일원. 지난달 31일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었다. 헬기 53대와 진화차 및 소방차 203대, 산불특수진화대 등 2000여 명이 진화에 나서 90%의 진화율을 보였지만 이날까지 주불 진화를 선언하지는 못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1.5㎞의 시뻘건 화선(火線)은 더욱 선명해지고 바람을 따라 미친 듯이 이동하고 있었다.
헬기 진화가 중단되자 본격적인 야간 지상 진화체계로 전환됐다. 오로지 산불 특수진화대원들의 시간이다. 이날 투입된 진화대원은 모두 366명. 18㎏ 무게의 물 펌프를 등에 지고 불 갈퀴도 불끈 쥐었다. 산 아래 배치된 진화 담수 차량에 연결된 긴 호스도 여럿이서 함께 산 정상 화선까지 끌고 올라가야만 한다. 산불 사흘째로 피로가 누적돼 오지만 눈앞에서 번져가는 불길을 볼 수만 없는 상태.
한 특수진화대원은 “진화차와 소방차 등 200여 대가 동원됐지만 임도가 없어 진화 차량이 접근할 수 없다”며 “임도만 있었더라면 벌써 진화를 마무리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째 현장에서 진화를 지휘해온 남성현 산림청장도 “물을 담은 진화 차량 등이 접근할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며 “헬기를 투입할 수 없는 야간에는 오로지 몸으로 더딘 사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산불 발생 때 임도의 역할은 진화 및 확산을 막는데 결정적이라고 설명했다.
1968년부터 국내에 조성되기 시작한 임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3981km. 산림청은 2019년 강원도 대형산불 이후 진화 차량 이동이 수월하고, 진화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취수장을 겸비한 ‘산불예방임도’를 국유림을 중심으로 조성해왔다.
효과는 컸다. 지난 3월과 5월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산불 확산을 막는 데 이 임도는 산불 확산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산불예방임도가 조성된 울진군 소광리 지역의 경우 임도가 거의 없었던 삼척시 응봉산 지역에 비해 산불피해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던 것. 특히 진화헬기 가용하기 어려운 야간에도 임도는 진화차량 진입과 인력의 신속한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임도는 주요 산림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
정부가 지난달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산불예방임도 개설을 위해 221억 원을 추가 편성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조성하고 있는 산불예방임도는 국유림에만 국한돼 있다. 전국 산림의 74%를 차지하는 공·사유림에서 발생하는 산불에 대응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임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산림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나 부재산주(不在山主)가 많은 데다 임도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동의조차 받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꼭 개설해야 할 임도 노선을 불가피하게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산불이 발생한 옥교산 일대도 대부분 사유림이어서 임도가 조성되어 있지 않아 산불을 진화하는 데 큰 애를 먹었던 것.
3일 오전 5시경 밤샘 지상 진화로 진화율은 전날 90%에서 비해 92%로 늘어나고 화선도 1.5㎞에서 1.2㎞로 300m쯤 줄였으나 임도부재에 따른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주불은 3일 오전 10시경 잡혔다.
산림청 하경수 과장은 “임도 사업은 지방으로 이양됐으나 새롭게 도입된 산불예방임도는 지방에 보조할 수 있는 사업으로 명시되지 않아 문제점이 많다”며 “임도 정책이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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