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쓰고 휙? 다시 쓰면 쓰레기 확 줄어요”[강은지 기자의 반짝반짝 우리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4일 03시 00분


‘쓰레기 박사’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저항 커 연기… 정부, 업계 반발 감수하고 시행을
포장재 없애거나 리필 활용하고 음식용기 등은 수거후 재사용해야
보증금제가 다회용기 확산 출발점… 쓰레기 없는 사회 시험대 될 것

지난달 18일 서울역 옥상에 있는 ‘알맹상점’에서 만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일회용 컵 대신 평상시 사용하는 다회용 컵을들고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18일 서울역 옥상에 있는 ‘알맹상점’에서 만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일회용 컵 대신 평상시 사용하는 다회용 컵을들고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환경의 날(5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주변을 되돌아보자.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일회용 컵 등 한 번 쓰고 버리는 것들이 가득하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우리 일상에 등장한 제품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원은 무한한가? 이렇게 계속 일회용품을 쓰는 것은 괜찮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지난달 18일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을 만났다. 홍 소장은 22년 전부터 시민단체에서 쓰레기 처리 문제 관련 활동을 시작해 관련 이론과 제도를 통달한 전문가다. 박사 학위는 없지만(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쓰레기 박사’라고 불린다. 홍 소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중구 서울역에 있는 알맹상점에서 이뤄졌다. 알맹상점은 포장재 없는 상품, 덜어서 살 수 있는 제품, 다회용품을 파는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는) 가게다.



○시행 미뤄진 일회용 컵 보증금제

“그간 판매자와 소비자가 외면했던 일회용 컵 처리 문제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라’고 도입한 제도가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예요. 어렵다고 안 하면, 플라스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죠?”

홍 소장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언급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살 때 보증금(300원)을 내고 반납할 때 돌려받는 제도다. 2020년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연간 약 28억 개가 사용되는 일회용 컵이 길거리에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시행 시기는 이달 10일이었지만 프랜차이즈 업계 반발이 커 12월로 미뤄졌다. 업계는 일회용 컵에 부착하는 반환용 라벨 구입비와 반환 업무를 맡을 추가 인력 등 부담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 도입 배경에 대해 홍 소장은 “‘오염자 부담 원칙’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염원을 만든 측이 오염 방지 비용을 내야 한다는 환경 원칙은 1970년대 초부터 글로벌하게 적용되고 있다. 가정집에서 쓰레기를 종량제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것도 이 원칙에서 나왔다.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회용 컵도 같은 맥락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정부도 무인회수기를 보급하는 등 가게들의 어려움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결국은 일회용 컵 사용으로 수익을 얻은 프렌차이즈 본사들이 해결 방안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처리는 어려워지는데
대나무를 사용해 만든 칫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대나무를 사용해 만든 칫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쓰레기 처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수도권매립지다. 서울 인천 경기 2600만 명의 시민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묻히는 이곳은 이르면 2025년 말 운영이 종료된다. 전국 곳곳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홍 소장은 “2018년 수도권에서 겪은 쓰레기 대란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일회용품 감축 로드맵은 있다. 당장 11월 24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부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수 없고, 편의점과 제과점에서도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다. 대규모 점포에서 제공하는 우산 비닐, 경기장에서 많이 쓰는 플라스틱 응원용품도 퇴출된다. 또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식당과 카페에서 플라스틱 재질의 일회용 물티슈 사용도 금지되고, 2024년부터는 대형마트에서 축·수산물 포장용 랩으로 쓰는 폴리염화비닐(PVC) 재질의 포장재도 쓸 수 없다.

그러나 이 계획이 제때 실현될지에 대해 홍 소장은 회의감이 든다고 한다. 그는 “2년 전 예고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도 미뤘는데, 앞으로 이런 규제도 업주들이 반발하면 다 미뤄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로 인한 반발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전 지구의 목표 ‘쓰레기 감축’
포장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고체 비누 형태의 샴푸 바(bar).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포장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고체 비누 형태의 샴푸 바(bar).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국제사회에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은 갈수록 빨라지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홍 소장은 “여기에 발맞추려면 한국도 전환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End plastic pollution: Towards an international legally binding instrument)’ 결의안이 통과됐다. 한국 정부도 참여한 이 결의안에는 2024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부터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규제하는 협약을 만든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제사회가 플라스틱,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률을 2025년까지 50%로 끌어올리는 ‘플라스틱 전략(Plastic Strategy)’을 2018년 발표했고 지난해부터는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별도의 플라스틱 세(tax)를 부과하고 있다. 또 플라스틱 종류별로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전략 과제들을 세우고 있다. 예컨대 비닐은 제품들의 재질 구조를 통일해 재활용이 잘되게 만들고,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기술에 정부와 기업이 집중 투자하는 식이다. 홍 소장은 “이와 같은 국제사회 흐름을 우리나라 기업들이 모를 리 없다”며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현재의 일회용 포장재와 일회용품 위주의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없는 사회’가 되려면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사용하는 천연 수세미.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사용하는 천연 수세미.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쓰레기 없는 사회.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 쓰레기 자체를 줄여야죠.” 그는 일회용 포장재를 없애고, 화장품과 세제 등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들은 필요한 만큼 덜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했다. “기업이 의무적으로 리필 제품을 만들고,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리필 코너, 포장재 없는 제품 코너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불필요한 포장재가 확 줄고 일상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도 사라지겠죠?”

알맹상점과 같은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마을마다 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2년 전 서울 마포구에 처음 문을 연 알맹상점은 포장재 없는 상품, 리필 가능한 상품만 팔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엔 서울역에 2호점을 냈고, 최근엔 제로 웨이스트 가게 운영 지침서 격인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도 출간했다. 홍 소장은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소비자들에게 우유팩과 양파망, 실리콘 등 같은 것끼리 모으면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을 받아 모은다는 점에 주목한다.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손쉽게 이용하면서 ‘제대로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구나’ ‘매번 새로 사던 화장품도 리필해서 살 수 있구나’란 인식이 생기면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겁니다.”

샴푸·로션 등을 리필하는 코너.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샴푸·로션 등을 리필하는 코너.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홍 소장이 생각하는 두 번째 변화는 다회용품 사용으로 재활용(recycle)이 아닌 재사용(reuse)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최근 일부 지역이나 시설에서도 음식을 일회용기가 아닌 다회용기에 담아 배달하고,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회수하는 데 별도의 비용이 들고 불편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다회용기 확산의 출발선이 될 수 있어요.” 홍 소장은 컵 보증금 제도가 실현되면 전국에 보증금 운용 시스템과 반납·수거 인프라가 마련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인프라를 활용하되 일회용 컵을 다회용기로 바꾸는 걸 생각해보세요. 빵집에서 파는 샌드위치도 플라스틱 용기가 아니라 다회용기에 담아 보증금을 붙여 팔고, 손쉽게 반납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우리 사회가 쓰레기 없는 사회로 전환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겁니다.”

#쓰레기 박사#홍수열#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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