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지는데 정부는 ‘성희롱’과 ‘괴롭힘’을 기계적으로 분류해 처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9일 ‘2021년 여성노동 상담사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접수된 노동상담 147건 중 직장 내 성희롱이 98건(66.67%)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직장 내 괴롭힘 21건(14.29%), 고용형태에 의한 차별 7건(4.76), 모집·고용상 성차별 6건(4.08%) 순이었다.
민우회 분석에 따르면, 최근 직장 내 성희롱이 괴롭힘과 결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희롱에 거부 의사를 밝혔을 때 보복의 일환으로 괴롭히거나, 동료들이 성희롱을 ‘상사로부터의 애정’으로 해석해 피해자를 따돌리는 사례 등이다.
민우회는 “현재 고용노동부는 접수된 사안을 단순 성희롱이나 괴롭힘으로 분류해 맥락에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전후맥락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사건을 판단해야 한다. 두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삭제되면 성희롱과 괴롭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통한 2차 가해 양상도 새롭게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블라인드에 사건에 관한 글이 올라왔는데, 내가 상사를 음해하려고 성희롱으로 몰고가는 거라는 댓글이 달렸다”, “블라인드에 상대방이 쓴 것으로 유추되는 글이 올라왔다. 내가 부장이랑 사귀는 사이라면서 전혀 사실이 아닌데 진짜인 것처럼 써놨더라”고 밝혔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회사 차원의 노력은 부족하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부정적인 소문 확산을 막도록 사내 공지로 요청하는 등 회사가 적극적 방안을 내놓을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밖에 인수인계를 가해자에게 직접 받으라고 하거나, 인사위원회에 피해자를 배제한 채 가해자만 출석하도록 하는 사례도 신고됐다. 회사가 성희롱 사건을 형식적으로 처리하면서 생긴 문제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경찰, 검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절차가 진행될 경우 회사가 손을 놓고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기도 했다. 가해자-피해자 분리 같은 최소한의 조치조차 지켜지지 않거나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휴가를 강요하는 식이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징계해도 오히려 정부가 이를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한 성희롱 피해자는 “회사가 사건을 조사해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리고 부서를 이동시켰다. 그런데 가해자가 노동위원회에 부서 이동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하자, 부서 이동은 과하다며 다시 원래 부서로 돌려놓으라는 결과가 나왔다”며 “피해자인 나는 어떡해야 하냐”고 호소했다.
민우회는 “회사가 선제적으로 피해자 관점에서 판단했을 때 정부는 이런 의지와 노력을 훼손해선 안 된다. 조직 구성원들에게는 성희롱을 문제 제기해도 소용없겠다는 인식이 쌓이고,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 사건도 회사가 소극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