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역대 지방선거 중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보이며 끝났습니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선거까지, 투표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낮아지는 건 아닌가 걱정됩니다.
현재 우리는 투표할 수 있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한 표가 주어진 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기 어렵게도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건 영국을 기준으로 1918년부터입니다. 이제 겨우 100년 남짓 지난 셈입니다. 그것도 아주 어려운 투쟁을 통해서요. 그 중심에 에멀라인 팽크허스트(1858∼1928·사진)가 있습니다.
팽크허스트 이전에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영국에서도 1860년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조지핀 버틀러 같은 여성들과 함께 14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여성참정권을 옹호하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은 여성에게 정치 참여를 허용하면 결혼제도나 가족제도가 흔들린다는 이유를 들어 계속 거부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팽크허스트는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여성의 정치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 당시 영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한 이들을 서프러제트(suffragette)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말보다 행동’이라는 원칙 아래 돌을 던지고, 시위를 조직하고, 감옥에서 단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13년 서프러제트 중 한 명이었던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참정권 운동단체의 깃발을 들고 경마장의 달리는 말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보수적이던 영국 사회로부터 엄청난 반발과 비난을 받습니다. 당시 신문기사의 삽화에는 그녀들이 마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분노는 다시 폭발합니다. 데이비슨의 장례식은 거대한 시위행렬로 변했고 이때부터 여성들의 참정권운동이 더욱 격렬해집니다. 팽크허스트와 세 딸은 그 중심에서 운동을 이끌어갑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일손이 부족해지자 여성이 전시노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운동을 변화시켰고, 전쟁 시기 여성들의 힘은 노동 현장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합니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마침내 30세 이상 영국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남편이 재산이 있거나 자기 재산이 있는 여성만 해당되었습니다. 이 당시 남성들에게는 전면적으로 보통선거권이 주어진 것과는 대조됩니다. 192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성도 같은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성별과 연령, 재산의 유무와 상관없는 보통선거권은 이렇게 어렵고 고된 길을 통해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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