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주문하자마자 관련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 주문의 가장 큰 성과는 40년 동안 꿈쩍 않던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일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원 팀이 돼 인재 양성 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해 이르면 다음 달 수도권 대학이 기존 정원을 넘어 첨단산업 학과를 만드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교육부는 대학 설립·운영 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다.
대학들은 반기고 있다. 그동안 수도권 대학은 첨단산업 학과 정원을 늘리기 어려웠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총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첨단산업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야 했다. 교수들의 반발을 뚫기 어려웠다. 그동안 전 세계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란 지적이 나왔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 발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설 수 없었다. 대학에서는 “비정치인 출신 대통령이라 해결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 당장 ‘규제 대못’을 뽑아도 수도권 대학이 첨단산업 학과를 신설하는 데 1, 2년 걸린다. 교육과정 개발과 교수 확보 등의 시간이 필요해서다. 학과가 만들어지고 졸업생이 배출되기까지 따지면 적어도 5, 6년의 시간이 지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세계 첨단산업 주도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고도 남는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대학이 기업과 ‘반도체 트랙’을 만들고 공동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해 현장실습 포함 일정 학점을 들은 3, 4학년에게 이수 자격을 주도록 교육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에서는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는 만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활성화된 원격수업을 활용하면 관련 인재를 더 많이 양성할 수 있다.
대학이 이런 트랙을 만드는 건 규정 정비도 필요 없다. 오직 한 가지 장애물은 ‘예산’이다. 첨단산업 관련 실험실과 장비를 구축하고 현장에서 일하던 인재를 교수로 영입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은 여력이 없다. 교육부가 첨단산업 트랙을 만들려는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면 당장 2년 뒤에 인재가 공급될 수 있다. 첨단산업 인재 양성은 장단기 전략이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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