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료 사회공헌]〈3·끝〉넓어지는 활동영역
고려대의료원, 사회공헌 본부 발족… 자원확보-현장활동 등 사업 총괄
감염병 재발대비 ‘모듈병상’ 만들고 봉사문화 정착 위해 구성원 교육도
비닐봉지 줄이고 탄소배출 억제 등 의료봉사 넘어 환경까지 활동 넓혀
‘ESG 경영’이 산업계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기업이 수익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친(親)환경적 사업을 해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며, 지배구조를 개선해 투명경영을 하라는 뜻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ESG 경영이 국내 병원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ESG 조직을 신설한 병원들이 부쩍 늘었다. 고려대의료원도 적극적이다. 올해 안암, 구로, 안산 등 산하 3개 병원 모두에 ESG위원회를 만들었다. 기존 병원들 상당수가 임시 기구 형태로 운영하는 반면 고려대의료원은 상설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의 ESG위원회는 다문화 가정과 소외계층의 의료 지원을 넘어 사회공헌 활동 영역을 넓게 잡았다. 가령 장애인과 비(非)장애인 간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장애인 채용을 늘린다거나 조직 구성원들의 친환경 행동 실천을 적극 권장한다. 의사와 병원은 환자만 잘 치료하면 된다는 생각은 옛날 얘기다.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사회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병원의 진짜 설립 취지”라며 “ESG위원회는 이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사회공헌 활동 컨트롤타워 필요”
고려대의료원은 지난해 5월 사회공헌사업본부를 발족했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병원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체계화하고,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며, 현장 활동을 관리하고 사업을 총괄한다. 사회공헌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박건우 사회공헌사업본부장(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각 병원이 시행 중인 의료 봉사 활동은 그대로 진행하면 된다”면서도 “전염병이나 대형 산불과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 때 체계적으로 움직이려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본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정점일 때 출범했다. 각 병원의 국내외 의료봉사 활동은 물론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염병 대책, 우크라이나 자원봉사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계획하고 조직했다.
가령 지난달 고려대 안암병원에 세운 ‘모듈병상’이 대표적이다. 이 병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프로그램이다. 또다시 감염병이 유행할 때 감염병 전담병원을 설치하려면 시간도 촉박하고 예산도 부족하다. 이를 대비해 신속하게 모듈형으로 설치해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했다. 이 모듈병상은 현재도 운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즉각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도 본부였다. 본부는 산하 병원 의료진을 상대로 지원자를 모집했고, 현지봉사 프로그램을 짰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국내에 왔을 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임신부의 출산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도 본부가 낸 것이다.
본부가 가장 염두에 두는 사업이 또 있다. 조직 구성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박 본부장은 “강제 혹은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베풀고 헌신한다는 가치가 조직문화로 뿌리내려야 봉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본부는 조직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조직원들이 특정일을 정해 봉사 활동을 벌이는, 이른바 ‘나눔데이’도 본부가 연구 중인 아이템이다. 자발적 봉사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취지다. 박 본부장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장려한다면 자연스럽게 봉사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공헌 활동, 대상과 지역 모두 확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 병원들의 국내외 사회공헌 활동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려대의료원도 여러 활동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본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통일 의료’다. 탈북주민에 대한 의료봉사에 그치지 않고, 통일 이후의 보건의료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탈북민의 질병 코호트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새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탈북 의사들과 진행할 공동 프로젝트도 이런 사업 중 하나다. 국내에서 의사면허를 딴 탈북자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하반기부터는 동부 아프리카 지역에 의료봉사 활동을 떠날 예정이다. 현재 마다가스카르에서 진행 중인 사업을 인근 케냐와 탄자니아, 모잠비크까지 확대한다. 지금은 현지에 정착해 있는 한국인 조직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단계다. 박 본부장은 “저개발 국가라 하더라도 무작정 가서 도와주겠다고 하면 현지 주민들의 자존심이 상한다”며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쟁터로 변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이어간다. 전쟁 와중에 굶고 있는 현지 아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굶주림은 물론이고 각종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현지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국내에서 만들어 보내는 방안을 찾고 있다.
신(新)의료기술과 장비는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수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계가 병원과 의학의 생리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박 본부장은 “병원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것도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라고 했다. 이를 위해 최고위과정을 9월에 선보인다.
○“활동 분야 다각도로 넓혀야”
3월 25일 고려대 의무부총장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고려대의료원 지부장 명의로 발표한 공동 선언이 화제가 됐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이다. 보통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 다루는 의제는 임금을 비롯해 근로 조건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 공동선언은 이와 무관한 내용이다. 노사는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의료원은 각종 설비 장치의 에너지 효율화를 추진하고, 교직원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노사는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교직원 생활수칙’도 발표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올바르게 배출하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 이용하기 △메일을 삭제하거나 화면을 절전 모드로 만드는 등 디지털탄소 발자국 줄이기 △난방 온도는 2도 낮추고 냉방 온도는 2도 높이기 △종이타월 대신 개인 손수건을,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사용하기 등이다.
박 본부장은 “앞으로 병원의 사회공헌 활동은 단순한 의료봉사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며 “환경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야 하고, 실제로 그런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부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 쓰레기와 폐기물에 대한 모니터링과 대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가령 수없이 많은 코로나19 백신 주사기와 플라스틱 약품 통 등이 어디로 갔는지, 그것이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박 본부장은 “얼마나 많은 의료 쓰레기가 발생하고, 어떻게 처리되며,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이 단순히 의료봉사에만 나설 게 아니라 의료 폐기물을 줄일 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는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쓰는 병원을 운영하는 것 또한 중요한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부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하반기에 대형 심포지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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