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최모 씨(58)는 12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주 재고량이 얼마남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도매상도 ‘방법이 없다’고 해 직접 공장에 갈 생각도 하고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트럭을 갖고 있는 지인들에게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다. 최 씨는 “물가도 올라 고기를 팔아도 남는 게 없다. 그나마 술을 팔아 버티고 있는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소주 재고량 바닥…석유·시멘트 공급 차질
7일 0시부터 시작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이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면서 자영업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복어전문점을 운영하는 윤명자 씨(62)는 12일 “이번 주는 다행히 소주 재고가 있어 어떻게 넘겼는데 다음 주가 걱정”이라고 했다. 상인들 사이에선 ‘다음 주 중 공급이 완전히 끊길 수 있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윤 씨는 “2년 넘게 빚만 쌓이다 이제 겨우 손님이 찾아오는데 소주 공급이 끊기면 장사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답답해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42·서울 중구)는 “안 그래도 파업 때문에 하루에 소주 1박스(20병)만 발주하도록 제한이 걸렸는데, 그마저도 공급이 안돼 지난주에는 일주일 동안 1박스밖에 못 받았다. 소주 찾는 손님이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하소연했다.
산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울산석유화학공단에는 트럭과 탱크로리 등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파업이 길어지면 생산은 물론 수출 차질까지 빚어질 수 있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12일 입장문을 내고 “운송 차질이 빚어지며 하루 평균 출하량이 7000여t 안팎으로 평소(7만4000t) 대비 10%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시멘트 출하량도 성수기 주말 하루 평균 출하량(17만4000t)의 6.3%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도권 레미콘 공장의 약 90%가 멈춰섰다고 한다. 김영석 서울경인레미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13일부터는 수도권 건설현장의 레미콘 타설이 중단돼 전체 공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뱃길을 통한 물류도 급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산항의 컨테이너 반출입 규모는 3915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로 평시인 올해 5월(2만1604TEU) 대비 18% 수준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천항은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국 12개 항만 중 광양항, 울산항, 동해항 등 7개 항만은 컨테이너 반출입이 끊겼다.
●10시간 마라톤 협상 결렬…4차 교섭 진행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12일 오후 2시부터 정부세종청사에서 화물연대와 만나 4차 교섭을 진행 중이다. 전날 열린 3차 협상은 10시간 넘게 머리를 맞댔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6단체를 포함한 31개 단체도 12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화물연대의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화물연대의 운송방해, 폭력 등 불법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해 산업현장의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화물연대 측은 국토부가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지 않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비판했다. 민노총은 이날 국제노동기구(ILO)에 이번 파업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않는 것에 대해 개입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된 7일부터 6일 동안 업무방해 등 불법행위를 한 조합원 43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 중 혐의가 중한 화물연대 울산본부 간부와 하이트진로 지부장 등 2명을 구속해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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