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몰래 나눈 같은 반 학생의 부모 험담이 퍼져버렸다. “진짜 말하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했지만, 친구가 이를 당사자에게 말해버린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당사자는 괴로워했는데, 이것도 학교폭력에 해당될까.
법원은 험담 자체는 잘못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전파력 높은 통신수단으로 이뤄진 대화가 아니었고, 당사자가 알게 될 줄은 몰랐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학교폭력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경북 소재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A군은 지난해 학교 기숙사 자습실에서 친구 B군과 잡담을 나누다 같은 반 친구 C군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속칭 ‘패드립’을 했다.
A군이 먼저 “생각난 드립이 하나 있는데, 말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고, B군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며 유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들은 B군은 이틀 뒤 C군에게 전했고, C군은 A군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다.
해당 지역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는 이것이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A군이 C군에게 서면사과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A군은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그러자 법원에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8일 법원에 따르면 대구지법 행정1부(부장판사 차경환)는 이를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는 A군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면사과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학교폭력예방법에서 규정한 학교폭력에 해당하려면 폭행, 협박, 명예훼손·모욕 등으로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 피해를 가한 경우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A군의 행위가 명예훼손·모욕에 해당하는지는 형법상 구성요건인 공연성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것이다.
하지만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이뤄진 것으로, 말하기를 망설이던 중 계속되는 권유와 비밀보장 약속을 받고 내뱉은 발언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SNS나 메신저 등 전파성이 높은 통신수단을 통해 발언한 것이 아니었으니 당사자에게 전달될 것을 예상했거나 공연성이 인정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발언이 피해학생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친구 사이의 비밀스러운 대화 도중 이뤄진 것”이라며 “피해학생에게 정신적 피해를 줄 의도로 한 가해행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학교생활 내외에서 학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나 분쟁의 발생은 당연히 예상된다”며 “학교폭력으로 인해 조치를 받은 경우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졸업할 때까지 보존하게 되므로 일상적인 학교 생활 중 일어난 어떤 행위가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말하는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발생 경위와 상황, 행위의 정도 등을 신중히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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