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등장한 치매 신약 ‘아두헬름’이 치료 효과 논란으로 출시 후에도 힘을 못 쓰는 가운데, 또 다른 치매 치료제 후보가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입증 못 했다.
로슈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 ‘크레네주맙’의 임상 2상시험 결과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들의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거나 예방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탑라인 결과를 발표했다.
상염색체 우성 알츠하이머병(ADA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임상에는 조기 발병을 유발하는 Presenilin 1 E280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 등 252명이 참여했다. 참여자에게 크레네주맙 또는 위약을 5~8년간 투여했다.
가족성 알츠하이머로 불리는 ADAD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 유전형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1% 미만이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개인에게 이런 돌연변이 중 하나가 있으면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이 거의 확실시되며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다.
임상 결과 유효성 1차 평가지표인 API-ADAD 종합인지점수 및 인지능력 또는 일화적 기억기능 변화 속도 평가에서 위약 대비 통계적인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2차 평가지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못 냈다.
앞서 로슈는 지난 2019년 초기 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에서도 1차 지표를 충족 못할 거란 판단에 임상을 중단한 바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정신병증 신약에 대한 규제당국의 판단 역시 긍정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카디아 파마슈티컬스는 17일(현지시간) FDA 산하 정신약물자문위원회(PDAC)에서 파킨슨병 환자의 망상 치료제인 ‘피마반세린’(제품명 누플라지드)의 알츠하이머 정신병증 확대 적용 안건을 부결했다고 밝혔다. 9명의 위원은 제시된 약효 근거가 부족하다고 투표(9대 3)했다.
스티브 데이비스 CEO는 “오늘 투표 결과에 실망했다”며 “피마반세린의 효능을 뒷받침하는 독립적인 임상연구와 평가변수 등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계속 믿고 있다”고 말했다.
피마반세린은 2016년 4월 파킨슨병 환자의 환각·망상 치료제로 승인된 이후 현재 치매 환자의 환각 등 정신병증 치료제로 사용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FDA 정신약물자문위는 오는 8월 4일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치매는 그동안 많은 제약기업들이 신약 개발들이 개발에 실패하면서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여겨졌다가 작년 6월 ‘아두헬름’(아두카누맙)이 미국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으면서 다시 조명받았다.
하지만 아두헬름의 유효성·안전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미국 공공의료보험 메디케어는 이 약의 보험 적용을 제한했다. 지난 4월에는 유효성 서류 부족의 이유로 바이오젠이 유럽 판매 신청을 자진 철회하며 위기에 봉착했다.
국내에서도 알츠하이머 신약을 개발 중이다. 젬백스앤카엘은 올해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GV1001’의 임상 3상을 승인받아 개발 중이다. 중등도~중증 알츠하이머 환자 936명을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아리바이오는 치매 진행 억제와 인지기능 향상을 모두 표적하는 다중 작용기전을 표방하며 ‘AR1001’의 3상 중이다. AR1001은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로 사용되는 ‘미로데나필’을 주성분으로 한다. 뇌혈관을 확장해 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고 장기기억 형성 단백질 및 뇌세포증식 단백질을 활성화하는 다중 기전이다. 이외에 디앤디파마텍, 샤페론 등이 개발 중이다.
석승한 원광의대 산본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의 여러 발병 원인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기존에 핵심적인 발병 기전으로 알려졌던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을 표적하는 전략의 치료제 개발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를 일으키는 발병 기전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고민과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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