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있기 2시간 전 계엄군이 장갑차 기관총에 실탄을 장착한 모습이 사진으로 처음 공개됐다.
22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진 3600여 장을 광주일보로부터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조사위에 따르면 제공받은 사진에는 1980년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기 최소 2시간 전 금남로에 있는 계엄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포함됐다.
사진 촬영 장소는 당시 광주일보 사옥이 있던 금남로 전일빌딩 앞이다. 촬영 시점은 금남로에서 시민을 향한 집단발포가 있던 오후 1시보다 약 2~3시간 전인 오전 10~11시경으로 조사위는 추정했다. 조사위는 타 언론사 촬영 사진과 관계자 증언을 통해 날짜를 특정하고 그림자 분석으로 시간대를 추정했다고 밝혔다.
사진 속 계엄군 장갑차에 실린 12.7㎜(캘리버 50) 기관총에는 실탄이 장착돼있다. 조사위는 “(이 사진은) ‘당시 계엄군에게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으며 시민들의 차량 돌진 공격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계엄군들이 철수하는 31사단 병력으로부터 경계용 실탄을 넘겨받아 비로소 발포할 수 있었다’는 계엄군 측 주장이 허위임을 증명하는 귀중한 사진”이라고 말했다.
앞서 조사위는 당시 금남로로 이동하는 계엄군 장갑차의 12.7㎜ 기관총에 탄통이 장착된 사진을 확보했으나 탄통에 실탄이 들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번에 넘겨받은 사진에서 탄통의 실탄이 식별됨으로써 실탄 사전 분배가 명확히 확인된 것이라고 조사위는 설명했다.
조사위는 당시 현장에 있던 공수부대 장병들에 대한 대면조사를 통해서도 장갑차의 12.7㎜ 기관총에 실탄이 장착돼 있었다는 것과 사격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검증했다고 했다.
당시 11여단 62대대 소속이던 김모 하사는 “캘리버 50을 (장갑차에) 걸어놓고 실탄도 걸어놓았다”고 진술했고, 같은 대대 김모 일병은 “APC에서도 (캘리버) 50을 쐈다. 훈련받을 때 50 쏘는 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는데 시내에서 쏘니까 소리가 울려서 빌딩으로도 쏴서 (소리가 컸다)”고 증언했다고 조사위는 전했다.
또 조사위는 과거 기록을 조사해 집단발포 몇 시간 전 실탄이 분배됐으며, 5월 21일 금남로에서 장갑차 기관총에 의한 발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11공수여단 정모 소령은 1994년 국방부 검찰부 조사에서 5월 21일 오전 10시 30분경 대대본부에서 중대장 1인당 실탄 10발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전교사에 근무했던 김모 장군은 1995년 검찰 조사에서 “5월 21일 오후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대장이 장갑차의 해치를 열고 기관총의 사격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위대가 장갑차로 덤벼들자 놀란 소대장이 엉겁결에 손잡이를 잡아당겨 수발이 발사됐다”고 진술했다. 당시 김영택 동아일보 기자(2014년 작고)는 ‘10:15 실탄지급 3개 소대 앞으로 돌진’, ‘10:25 공수(탄약지급) 부대와 대학생 관광호텔 앞에서 50m 거리에 대치’라고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발포 상황 진상규명은 물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은폐, 왜곡, 조작 사건을 규명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는 태극기에 감싸진 시신이 픽업트럭에 실려 있는 모습과 금남로4가 사거리에 사람이 쓰러져있는 모습도 담겼다. 이들 모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로, 사망 또는 피격 당시 정황 확인 등 피해자 조사에 긴히 쓰일 것으로 조사위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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