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에 尹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
“재가도 안난 인사 유출” 경찰 질타… 野 “정부 경찰통제 시도 극에 달해”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경찰의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과 관련해 “아주 중대한 국기 문란, 아니면 어이없는,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과오”라며 경찰을 질타했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간 갈등이 격화된 와중에 윤 대통령이 ‘경찰 책임론’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에서 행안부로 자체적으로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을 해버린 것”이라며 “말이 안 되는 일이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국기 문란일 수도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라며 “아직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안부에서 검토해서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인사가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언론에 마치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간 것”이라며 ‘인사 번복설’을 직접 부인했다. 경찰이 대통령의 결재가 없는 상태에서 인사 발표를 강행했다가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작심 발언을 두고 김창룡 경찰청장에 대한 경질 혹은 자진사퇴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김 청장은 이날 퇴근길에서 “청장의 역할과 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사실관계 파악은 마쳤다”며 “행안부의 진상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경찰 통제 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 일파만파
경찰 내부 “金청장 사퇴로 수습해야” 일부선 “경찰 반발에 길들이기” 불만 김창룡 “업무 소홀히 하지 않겠다”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재가 전 치안감 인사안을 발표했다가 번복한 것을 두고 ‘국기 문란’이라고 못 박자 경찰은 발칵 뒤집혔다. 경찰 일각에선 “김창룡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용퇴하라”는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경찰 사이에선 “행정안전부 장관이 인사제청권으로 경찰을 농락했다”는 반발도 나온다.
○ “대통령, 경찰의 중대 실수 강조”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윤 대통령이) ‘국기 문란’ 내지는 ‘과오’라고 했는데, (경찰의) 중대한 실수라는 점을 강조한 걸로 보인다. (번복) 과정에 대해서는 일단 경찰 쪽에서 먼저 조사가 있어야겠다”며 경찰 내부 진상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당장 더 조사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에게 “사건 관련 경찰청 인사는 인사담당관뿐인데 이미 사실관계 파악을 마쳤고, 나머지는 행안부 등 소속이라 감찰이나 추가 조사는 어렵다”며 “행안부 진상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행안부는 사실관계를 대부분 파악했으며 이번 사태의 책임자에 대한 처분 등 후속 조치를 대통령실과 협의해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과거 정부에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과 경찰청 간 조율을 통해 인사안을 마련하면 행안부 장관이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인사비서관실과 조율해 최종안을 마련했는데, 행안부에 파견된 경찰 경무관(치안정책관)이 초안을 경찰에 보냈고 경찰이 이를 최종안으로 받아들여 공표하면서 초유의 ‘인사 번복’ 사태가 발생했다.
이 장관은 23일 이번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 결재도 안 된 상태에서 기안 단계(의 인사안)를 (경찰) 인사담당자가 확인하지 않고 내부 공지해버려 문제가 됐다”고 못 박았다. 또 “치안정책관은 (인사안을 보내며 인사비서관실에) 확인하라고 했다. 특별한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도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에서 자체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해 버린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은 “앞으론 대통령 결재 후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경찰청장 사퇴로 사태 수습해야”
윤 대통령은 이날 “경찰보다 더 중립성과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검사 조직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며 행안부 내 경찰 전담 부서 설치의 당위성도 처음으로 언급했다.
전담 부서 설치를 포함해 행안부의 경찰 통제 방안을 담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 권고안에 경찰 지휘부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데 이어 치안감 인사 논란까지 빚어지자 경찰 내부에선 지휘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23일 “(새 정부 들어) 이어진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달리고 있다”며 “이는 모두 경찰 수뇌부의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달 23일 임기를 마치는 김 청장이 지금이라도 물러나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일선 경찰은 23일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새 정부가 전현직 경찰을 처참하게 만들고 있다. (반대의 뜻으로) 청장이 용퇴해 자존심을 지키라”고 썼다. 그러나 김 청장은 이날 퇴근길 사퇴 여부에 대한 질문에 “청장이 해야 할 업무를 소홀히 하진 않겠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 ‘경찰 길들이기 인사’ 반발도
경찰 내부에선 ‘인사 번복’ 논란과 별개로 정부가 발령일 전날 오후 늦게 인사를 발표한 것 자체가 ‘경찰 길들이기’라는 불만도 일고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저녁에 통보받고 다음 날 아침에 부임하느라 직원들에게 인사도 못 하고 야반도주하듯 짐을 쌌다”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경찰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최근 경찰의 조직적 반발을 의식한 보복성 인사”라고 성토했다. 경찰의 노동조합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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