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22화입니다.》
“2013년 12월~2014년 1월 당시 증인이 검토한 결과는 수용 방식보다 환지 방식이 낫겠다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린 겁니까, 아니면 환지 방식이 적절하다고 결론을 놓고 일이 진행된 겁니까?”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3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 한모 씨는 이 같은 재판부의 질문에 “후자로 진행됐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가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급자가 (증인에게) ‘환지 방식을 검토해보라’고 말한 건 맞느냐”고 묻자 한 씨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2013년 공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대장동 사업 실무를 담당해 온 한 씨는 올 1월에도 이 재판의 첫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던 인물입니다. 한 씨는 당시 “2013년 12월 유동규 전 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사무실에서 정영학 회계사 등 민간사업자들을 만나 대장동 사업제안서를 받고 설명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한 씨는 당시 사업제안서가 환지 방식을 기반으로 했으며 대장동의 체비지(替費地)를 용도 변경해 그 수익을 제1공단 공원 조성비로 쓰는 내용을 담았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유 전 직무대리가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 등 기존 민간사업자들을 위해 사업 방식을 수용이 아닌 환지로 정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유 전 직무대리는 2009년경부터 환지 방식을 기반으로 한 민간개발을 추진해왔던 이들에게 2013년 4~8월 3억5200만 원의 뇌물을 받는 등 유착해있던 상태였습니다.
● “상급자 지시로 환지가 낫다는 결론 놓고 보고서 작성”
간단히 말해 수용 방식은 사업 시행자가 보상금을 주고 원주민의 땅을 사와서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고, 환지 방식은 개발을 진행한 뒤 원주민에게 땅을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검찰이 문제로 삼는 건 2014년 5월 성남시가 대장동·제1공단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고시하면서 사업 방식을 “사업자 지정시 추후 결정”으로 공고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성남시는 이미 내부적으로 수용 방식을 전제로 해서 제1공단과 대장동의 결합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유 전 직무대리가 정 회계사의 사업제안서를 검토해 보라고 한 이후 급하게 ‘추후 결정’으로 바뀌었다는 게 검찰의 시각입니다. 유 전 직무대리가 민간사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에 이런 공고가 나왔다는 겁니다.
한 씨는 정 회계사를 만난 이후인 2013년 12월~2014년 1월경 수용 방식과 환지 방식이 갖는 각각의 장단점을 검토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 씨는 수용 방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환지 방식을 택할 경우 제1공단 공원화가 어렵다고 생각해 정 회계사의 제안서 내용도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 씨가 실제로 작성한 보고서 내용은 오히려 수용 방식의 단점과 환지 방식의 장점을 부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재판부도 직접 이에 대해 “보고서를 보면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는 환지 방식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보이기도 한다”며 “보고서 작성은 2014년 1월 무렵에 사업 시행 방식을 결정하지 않거나 추후 검토를 통해 수용 방식을 (환지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게 하는 논거를 만드는 차원이었냐”고 했습니다.
한 씨는 이러한 보고서들이 상급자 지시에 따라 환지 방식이 낫다는 결론을 상정해 놓고서 작성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한 씨는 누구에게 지시를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지시에 의해서 검토를 했기에 지시에 맞는 검토 결과를 낸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한 씨는 만약 환지 방식으로도 1공단 공원 조성을 할 수만 있다면 사업 방식이 뭐가 되느냐 자체는 크게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 “환지 방식으로 하면 막대한 주민 피해 예상”
24일 열린 39차 공판에는 한 건설엔지니어링업체 전무이사 배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업체는 성남시와 계약을 맺고 대장동 개발사업 지구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설계 등의 용역을 수행한 곳입니다. 당연히 사업 시행 방식을 환지로 할지 수용으로 할지도 이 업체의 검토 대상이었습니다.
이날 배 씨는 “저희는 당연히 처음부터 수용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로) 알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배 씨는 “환지 방식으로 한다면 대장동 주민들이 1공단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아서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환지로 한다고 하면 주민 피해가 막대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1공단에는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환지 방식을 택하면 1공단 주민들과 대장동 주민들이 대장동 땅을 서로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씨가 ‘정영학 제안서’를 받은지 한 달 뒤인 2014년 1월 9일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결재한 성남시의 ‘대장동·제1공단 결합개발 추진계획 보고서’에는 사업 시행 방식이 “사업자 지정시 추후 결정”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틀 전 공사는 성남시에 “사업 시행 방식은 구역지정 뒤에 개발계획 수립 시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건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토 요청 등을 받은 적이 있냐는 검찰의 질문에 배 씨는 “정책적 판단이라 공사와 성남시 조율 단계에서 도출된 것 같고 저희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어 검찰은 배 씨에게 2014년 5월 성남시 공고처럼 “사업 시행 방식을 정하지 않고 ‘추후 결정’으로 (공고하는 건) 보편적이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배 씨는 “대부분 결정하고 들어간다. 다만 주민들과의 (민원 등)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어서 추후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시행 방식을 적용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주민 등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그랬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검찰이 “어쨌든 일반적 경우는 아니냐”고 묻자 배 씨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제 대장동 개발사업은 환지가 아닌 수용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도시개발법상 도시개발공사는 과반의 지분을 출자할 경우 토지 수용 권한을 갖는데, 이를 위해 2015년 6월 공사는 대장동과 제1공단의 결합개발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 성남의 뜰에 과반의 지분(50%+1주)을 출자했습니다. 이에 따라 화천대유자산관리 측이 토지수용으로 땅을 헐값에 확보할 수 있게 하면서도 정작 이익을 배분할 때는 민간이 싹쓸이해 가져갈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이 설계됐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일 열립니다. 이날 재판에는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가 대장동 민영개발을 추진하던 시기 동업자 중 한 명이었던 민모 씨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