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가운데 65%에 이르는 561만 가구의 건강보험료가 9월부터 평균 3만6000원씩 내려간다. 반면 그동안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던 고령층 등 27만3000명은 이때부터 새로 건보료를 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30일 입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건강보험 개편의 핵심은 재산이 아닌 소득 위주로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의 부담이 줄어든다. 그동안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에도 주택과 자동차 등 재산에 건보료가 책정돼 직장가입자와 비교할 때 부담이 더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는 9월부터 지역가입자가 시가 1억2000만 원(공시가격 8333만 원) 이하의 집이나 땅 등 부동산을 가진 경우엔 재산보험료를 징수하지 않기로 했다. 기본 공제 역시 기존 재산 규모에 따라 500만∼1350만 원을 해 주던 것을 일괄적으로 5000만 원으로 올렸다. 자동차에 부과하는 건보료 역시 4000만 원 이상 고가 차량을 가진 경우에만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반면 건보료를 낼 여력이 있음에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사람은 줄인다. 기존에는 연소득 34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했다. 하지만 9월부터 그 기준이 연소득 2000만 원으로 바뀌어 대상자가 줄어든다. 이와 함께 직장가입자 중에서도 이자, 배당 등으로 버는 소득이 연 2000만 원을 넘으면 건보료를 추가 징수하기로 했다. 전체 직장인의 2% 정도가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年소득 2000만원 넘으면 피부양자 탈락… 건보료 내야
9월부터 건보료 어떻게 바뀌나 직장가입자에 ‘무임승차’ 줄이기… 기준 年3400만원→2000만원 줄여 지역건보 4000만원미만 車 안매겨… 1억2000만원 이하 집-땅도 면제 재산 공제 5000만원 일괄 확대
30대 자영업자 김철수(가명) 씨는 매달 버는 125만 원 중 17만 원(13.6%)을 건강보험료로 내고 있다. 소득뿐 아니라 김 씨가 사는 전셋집 보증금 1억2000만 원과 7년째 타고 있는 배기량 1800cc짜리 승용차에도 건보료가 부과된다. 이 때문에 소득에만 건보료가 부과되는 데다 그 절반을 회사가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
9월부터는 김 씨가 내는 건보료가 월 8만7000원으로 줄어든다. 보건복지부가 29일 발표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2단계 개편안’에 따라 전셋집과 자가용에 부과되던 보험료가 ‘0원’이 되기 때문이다. 자영업 소득에 대한 보험료도 기존보다 3분의 1가량이 줄어든다.
○ 지역가입자 10명 중 6명은 재산보험료 ‘0원’
국내 건강보험은 그동안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만 보유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고 있었다. 보유 주택은 물론이고 전월세 보증금, 보유 승용차도 보험료 책정 대상이다. 예전에는 자영업자 소득이 실제보다 적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어 집과 차를 ‘보조 지표’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1주택자처럼 재산 때문에 경제 능력에 비해 과도한 보험료가 부과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재산에 따라 부과하는 건보료를 줄이는 건 이 때문이다. 신용카드 사용으로 과거에 비해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투명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역가입자의 보유 주택, 임대 보증금 등에 건보료를 부과할 때 지금까지 재산 액수에 따라 과세표준 기준 500만∼1350만 원을 기본 공제해줬다. 9월부터는 이 공제액이 일괄 5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시가 기준으로 약 1억2000만 원 이하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재산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지역가입자 약 530만 가구(전체의 62%)가 재산 보험료를 내지 않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배기량 1600cc 이상 자동차에는 모두 보험료를 부담하던 것을 현재가 기준 4000만 원 이상 차량에만 부과하기로 하면서 부과 대상 자동차도 179만 대에서 12만 대로 줄어든다.
지역가입자 소득에 따른 보험료 산정 기준도 직장가입자와 같이 ‘소득의 6.99%’로 정률화하기로 했다. 기존 시행하던 등급제에서 저소득층일수록 소득 대비 보험료 비율이 직장가입자에 비해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 피부양자 탈락 27만 명, 첫해는 20%만 부과
피부양자는 건보료를 내지 않고 직장가입자 밑에 들어가 건강보험 보장을 받는 사람이다. 직장인의 어린 자녀가 대표적이고, 같이 살지 않는 부모나 형제도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이번에 피부양자 기준을 연소득 ‘3400만 원 이하’에서 ‘2000만 원 이하’로 바꾸면서 9월부터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되는 이는 27만3000명이다. 현재 국내 피부양자는 1809만 명으로, 정부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피부양자가 많아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실제 한국의 직장가입자 1명당 피부양자 수는 0.95명으로, 일본(0.68명)과 대만(0.49명) 등 인근 국가들에 비해 높다. 정부는 2018년에도 피부양자 기준을 연소득 4000만 원 이하에서 3400만 원 이하로 한 차례 강화했다. 당초 이번에 피부양자 재산 기준도 공시가격 9억 원 이하에서 6억 원 이하로 강화하려 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점을 고려해 재산 기준은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피부양자였다가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이들은 첫해인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는 실제 부과되는 보험료의 20%만 내면 된다. 이후 매년 20%씩 늘어 5년 차부터 전액을 내게 된다. 안 내던 보험료를 갑자기 내면서 생기는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취지다.
한편 이번 개편에 따라 한 해 걷히는 건보료는 기존 대비 연 2조800억 원가량 줄어든다. 이기일 복지부 2차관은 “현재 건강보험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충분히 시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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