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주민들 몰아넣고 난사”
생존자-유가족 증언 공익차원서
학살현장-합동묘역과 함께 추진
“군인들이 주민들을 박산 골짜기에 몰아넣고 기관총으로 난사했어요. 엉겁결에 머리를 처박고 아래를 보니 시체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 참혹한 광경이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국군이 공비토벌 명분으로 경남 거창군 신원면 주민 719명(어린이 385명 포함)을 학살한 거창사건. 당시 몇 명 안 되는 생존자였던 고 신현덕 씨(당시 24세)의 증언이다. 신 씨의 이 증언은 앞으로 국가기록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남 거창군은 거창사건 생존자와 유가족 증언(영상)을 학술·공익적 차원에서 국가기록원 기록물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 “밭에 일렬로 세우고 무차별 총질”
거창사건은 국내 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은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1951년 3월 29일 거창 출신 고 신중목 국회의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주민들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유족회를 결성했지만, 과거 정부가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아픔을 겪었다. 71년이 지나도록 희생자 유족들이 바라는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영상기록물을 수집해 기록 정보를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기 위해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영상에 대한 수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등록 대상은 거창 사건 생존자 10명과 유가족 7명 등 17명이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증언한 14개 구술영상이다. 국가기록원은 올해 초 거창사건을 다룬 2013년 개봉한 영화 ‘청야―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영상기록물로 수집한 바 있다.
고 김운섭 씨(당시 10세)는 구술 영상에서 “눈 오는 날 군인들이 들이닥치더니 개 끌듯이 끌어내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김장 배추에 고춧가루 뿌린 것처럼 눈밭이 피천지가 됐어요. 우리 어머니는 얼굴 반쪽이 날아가서 없었고, 열세 살 먹은 내 형은 온몸이 벌집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고 문홍준 씨(당시 34세)도 “총질은 2시간가량 계속됐다. 쉬었다가 다시 꿈틀대는 사람이 있으면 총질을 또 하고 또 쉬었다가 이렇게 수십 차례. 우리는 이제 살려 주는가 했더니 고추밭에 일렬로 세우고 총질을 해 그 자리에서 10명이 죽고 나와 신현덕만 남게 됐어요”라고 구술했다.
● 역사적 학살 현장, ‘국가문화재 등록’도 추진
거창군은 올 4월 국가기록원에 기부 방식으로 등록 가능성 여부를 타진했고, 공감대를 얻어냈다.
거창군은 지난달 14일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증언영상 사본을 제출하고 등록 신청을 협의했다. 국가기록원은 내부 검토를 거쳐 다음 달 외부 전문가 심의를 열고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거창군은 또 학살이 이뤄진 박산골, 탕량골, 청연마을 희생 장소 3곳과 박산합동묘역 등 4곳의 국가문화재 등록도 추진하고 있다. 거창군은 지난해 7월 경남도 문화재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에 국가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10일 현지실사를 했고, “등록 구역을 실제 사건 발생 장소로 한정해 조정하고, 등록문화재 활용계획서를 구체적으로 수립하라”고 보완을 요청했다. 거창군은 유족회와 협의를 거쳐 지난달 30일 최종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문화재청은 올 9∼10월 중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해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문화재가 되면 법적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 되며, 보수·정비와 활용 사업 지원이 가능하다.
거창군 관계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잊혀져 가는 비극적 역사의 진실을 기억하고, 생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서 국가기록물 등록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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