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수달, 황조롱이, 안주애기박쥐. 이 야생동물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다름 아닌 인구 950만의 대도시 서울이다. 도시에도 많은 야생동물이 산다. 늘어나는 도시 야생동물과 슬기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도시 야생동물과 슬기로운 공존법
“부엉이 보셨다고 연락 준 분이시죠?”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서울시야생동물센터 하민종 수의사가 경비실을 지키던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바로 하 수의사를 지하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주차장 천장에서 투명한 창문을 향해 막무가내로 몸을 날리는 비둘기만 한 크기의 새가 보였다. 천연기념물 제324호 솔부엉이였다.
아파트 관리직원들이 주차장 바깥에서 창문을 두드리면서 솔부엉이를 아래 방향으로 몰았다. 그러자 기다리던 하 수의사가 재빠르게 포획용 채를 날려서 솔부엉이를 낚아챘다. 하 수의사는 “새들은 공사장이나 지하주차장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가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며 “유리창으로 나가려다가 머리를 세게 부딪쳐 안구가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날 포획한 부엉이는 큰 외상이 없어 보였다.
세밀한 상태 점검을 위해 솔부엉이를 상자 안에 넣고 차에 태웠다. 뒷좌석엔 이미 이송용 주머니에 싸인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타고 있었다. 직전에 119수서안전센터에서 인수한 동물이다. 대치지하차도에서 발견된 이 고라니는 목과 앞다리에 자상과 쓸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 야생동물로 북적이는 구조센터
서울시야생동물센터는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은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해 다시 자연 생태계로 돌려보내는 곳이다. 하 수의사를 포함해 진료수의사 2명, 재활관리사 4명, 행정직원 1명이 상근한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있다.
센터는 서울시가 야생동물을 적극 구조하고 관리하기 위해 2017년 서울대 수의과대와 수탁운영 협약을 체결하면서 문을 열었다. 야생동물은 산과 들 또는 강 등 자연에서 서식하거나 자생하는 동물을 뜻한다. 소와 닭처럼 사람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키우는 가축이나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은 센터에서 치료하지 않는다.
3일 찾아간 센터는 입원실 역할을 하는 계류장마다 야생동물로 북적였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둘기, 참새, 우리나라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등 조류가 가장 많았다. 포유류로는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등이 눈에 띄었다. 계류장 세 곳의 철제 우리와 플라스틱 상자가 동물 130마리로 가득 차 있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날개가 부러지거나, 안구가 손상되는 등 부상 종류와 정도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대부분은 사람의 잘못으로 여기 옵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 때문에 다치거나, 누군가 멋모르고 서식지에서 데리고 나와 미아가 되는 경우죠.” 하 수의사가 설명했다.
계류장 옆에는 간단한 처치를 하는 시술실, 센터 위층에는 더 큰 규모의 수술실이 있었다. 이날 기자가 센터를 방문한 시간에도 서울 마포구의 한 공사장에서 기름통에 빠져 화상과 외상을 입은 큰부리까마귀가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의료진은 시술실에서 항생제와 진통소염제를 투여하고 외상 부위를 소독했다. 큰부리까마귀는 고통스러운지 재활관리사의 손을 부리로 물며 몸부림쳤다.
이렇게 치료를 해도 사망하는 동물이 적지 않다. 센터장인 연성찬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날개가 부러진 새는 어렵게 뼈를 붙여놔도 그 사이 근육과 인대가 굳어서 날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렇게 되면 방사해도 죽는 것이라 야생동물들이 다치는 일 자체가 줄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울에 사는 육상 야생동물만 304종
서울시야생동물센터는 지난해 동물 1491마리를 구조하거나 치료했다. 개소 첫해인 2017년 293마리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구조되는 야생동물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야생동물의 수가 늘었다는 뜻이다. 실제 서울에는 9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도 많이 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서울에서 사는 육상 야생동물(곤충 제외)은 포유류 31종, 조류 235종, 파충류 22종 등 304종에 이른다. 이 중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도 각각 36종과 10종에 달한다.
최근엔 희귀한 야생동물이 발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산양이 서울 인왕산, 안산 등지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올해 1월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흐르는 탄천과 지난해 12월 여의도 샛강공원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수달이 발견됐다. 서울 청계천에는 ‘선비의 상징’이던 백로가, 서울 여의도와 강남구 빌딩숲에는 안주애기박쥐라고 불리는 작은 박쥐가 산다. 이 밖에 너구리, 족제비도 자주 발견되는 야생동물이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전국 야생동물센터 구조 개체 1만7545마리 가운데 서울과 5대 광역시에서 구조된 개체만 5702마리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물론 사람이 많이 살다 보니 신고 건수가 많았을 수도 있지만 야생동물 수가 적었다면 이 정도의 신고 건수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 연락처는 ‘한국야생동물센터협의회’(www.wildlife.or.kr)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 갈 길 먼 도시 야생동물 보호
야생동물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자연환경이 살아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들어 대도시 시민들의 녹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녹지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건강한 동식물 생태계가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야생동물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관리, 보존하는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서울시는 마포구 노을공원 맹꽁이 서식지 등 6곳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탄천 등 17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개발 및 이용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도로가 갈라놓은 녹지를 연결하기 위한 생태통로도 지난해 말까지 33개 설치했다.
하지만 도시 내 주거지 개발 등으로 야생동물은 꾸준히 서식지 위협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녹지와 공원, 습지, 생태통로를 더 늘리는 것과 함께 야생동물의 습성에 맞는 서식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들에게 먹이가 되는 식물을 심거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야생동물이 살기 용이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시 야생동물의 공존 방안을 연구해온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우동걸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면적은 전 세계 육지의 0.15%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고 있는 동식물 수는 세계 전체의 2.5%에 이른다. 면적 대비 상당히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우 연구원은 “국내에서 토지를 개발할 때 야생동물 영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도 더욱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며 “본래 야생의 공간이었던 곳을 인간이 침범하는 것인 만큼 사람들이 야생동물에게 그들의 공간을 돌려주고 갚는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사고 저감 위한 시설도 늘려야
도시 개발사업을 하거나 건물을 신축할 때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인간이 만든 시설과 구조물로 인해 매년 많은 야생동물이 사망한다. 일명 ‘로드킬’로 불리는 동물 찻길 사고 신고 건수는 2015∼2019년 5년간 8만2170건에 이른다. 미신고건을 감안하면 매년 엄청난 수의 야생동물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생동물들은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큰 부상을 입게 된다. 하 수의사는 “고라니가 교통사고를 당할 때 치이는 위치가 딱 척추 정도”라며 “살아남더라도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사실상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늘 위 로드킬’이라 불리는 조류 충돌은 세기가 어려운 정도다. 정부는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폐사하는 야생조류가 연간 8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막으려면 각종 시설물을 만들 때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도로가에 야생동물의 월담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야간에도 볼 수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야생동물 표지판을 설치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새들의 로드킬을 막기 위해 건물 외벽 및 방음벽에 불투명창을 설치하거나 투명창을 설치하더라도 새들이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격자무늬 등 가로 10cm, 세로 5cm 이하의 무늬를 넣는 게 좋다.
“다친 야생동물, 무작정 옮기면 안돼” “방생 대비해 발견 장소 기억을”
야생동물 어떻게 구조해야 하나
어린 새끼는 외상 없어 보이면, 어미가 데려가는지 지켜보고 만질 때는 장갑 끼는 게 좋아
Q. 쌀쌀한 아침, 서울 여의도 샛강공원을 산책하던 A와 B는 나무 아래 수풀에서 아기 새 두 마리가 고꾸라져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중 좀 더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은 누굴까?
A. 날이 춥고 다른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새끼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했다.
B. 일단 구청 야생동물 담당자에게 신고한 뒤 조금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정답은 B다.
A와 같은 경우가 많은 사람들이 혼자 떨어져 있는 야생동물 새끼를 만났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둥지에서 떨어지거나 잠시 무리에서 벗어난 새끼를 무작정 옮기면 어미도 새끼도 영영 서로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새끼가 곧장 미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미와 떨어진 새끼는 건강을 회복해서 방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더라도 자연에서 온전히 제힘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린 야생동물 새끼가 다치거나 홀로 떨어져 있으면 어딘가로 데리고 가 구조 요청을 한다. 지역을 불문하고 구조센터에 들어오는 동물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바로 이런 단순미아 건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전국 구조센터에 입소한 야생동물 1만7545마리의 입소 원인을 분석한 결과 미아로 들어온 경우가 4621건(26.3%)으로 충돌(3738건), 교통사고(1699건)보다 많았다.
전문가들은 다치거나 어미를 잃은 것 같은 야생동물을 발견했을 때 섣불리 구하려 하기보다는 구조센터나 지자체에 먼저 연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어린 새끼에게 큰 외상이 없어 보인다면 충분한 시간 멀리서 지켜보고 구조를 결정해야 한다. 포유류의 경우 어미가 잠시 먹이를 구하러 나간 것이거나 사람이 가까이 있어서 새끼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섣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선의를 가지고 구조하려던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야생동물은 반려동물과 달리 사람을 공격한다. 기생충이나 질병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꼭 동물에게 다가가야 한다면 동물이 물거나 할퀴어도 다치지 않게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 구조한 뒤에는 물이나 먹을 것을 함부로 주면 안 된다. 부적합한 먹이는 도리어 야생동물을 더 아프게 만든다.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나중에 방생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처음 발견한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도록 한다. 야생동물의 사체는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집단 폐사한 조류의 경우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질병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 등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에서 동물을 치었을 때는 가급적 동물을 도로 밖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사체를 먹으려고 다른 동물들이 도로 위로 모여들면 추가 사고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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