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찾아간 국내 첫 반도체 마이스터고인 충북 음성군의 충북반도체고. SK하이닉스에서 30년간 근무하다 2009년 이 학교에 산학겸임교사로 온 손현명 교사와 3학년 학생 6명이 방진복장을 갖추고 ‘포토 공정 실습실’에 모여 있었다. 공기순환장치와 온도제어장치로 ‘클린룸’(먼지·세균이 없는 생산시설)을 갖춘 이 실습실은 기업들이 실제 쓰던 반도체 생산 라인을 기증 받아 만들어졌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게 모두 있지만 학생들이 실제로 반도체를 만들어볼 수는 없다. 현장 경험을 갖춘 교사 부족과 안전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반도체 분야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 정원 규제 완화 등을 추진 중인 가운데 관련 산업 현장에서는 반도체 생산 일선을 책임질 고졸 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마이스터고도 이런 실정이다 보니 일반 특성화고의 반도체 전공과는 여건이 더 안 좋다. 올해 2월 졸업생의 96.3%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관련 기업에 취업한 충북반도체고에서 현재 고졸 인력 양성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 실제 반도체 못 만들어보고 졸업
1969년 공립 무극종합고로 개교한 충북반도체고는 2010년 교육부 인가를 받아 반도체 마이스터고로 전환했다. 경남 밀양시의 한국나노마이스터고(2019년 전환)와 함께 국내에 두 곳뿐인 반도체 마이스터고다. 김진권 충북반도체고 교감은 “학교가 위치한 음성과 충북 청주, 경기 이천 등 인근 지역에 반도체 기업이 많이 있어서 산학협력이 용이한 점을 인정받아 마이스터고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충북반도체고의 실습실은 실제 현장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2009년 SK하이닉스와 세미텍으로부터 ‘반도체 6대 공정’이라고 일컫는 포토·에치·디퓨전·신필름·패키지·인펙션 공정실을 기증받은 덕분이다. 총 37억 원 규모다. 감광액, 프로필알코올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재료도 모두 구비돼 있다. 반면 일반 특성화고들은 대당 1억 원이 넘는 반도체 장비를 전혀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충북반도체고 3학년 학생들은 이곳에서 산학겸임교사의 지도하에 일주일에 6∼9시간씩 장비를 손에 익힌다. 그러나 직접 반도체를 만들어볼 기회는 없다.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특수가스는 공기 중에 노출되면 불이 붙는 성질이 있어 안전상의 이유로 학교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특수가스가 없는 ‘속 빈 장비’로 실습을 하고 있다. 특수가스를 반도체 생산 장비에 일정한 압력으로 공급하는 부품인 유량제어기를 유지·정비하는 실습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충북반도체고 및 반도체 전공이 설치된 특성화고들은 최근 교육부에 첨단장비 관련 공동실습소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학교 밖에 안전 장비와 관리 감독을 강화한 공간을 만들어 실습 효과를 높이자는 취지다. 공업고나 농업고 등에서는 개별 학교 단위로 구비하기 어려운 기자재를 특정 장소에 설치해 학생들이 이용하도록 전국에 37곳의 공동실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 반도체 노하우 전수해 줄 교사도 부족
충북반도체고는 현재 2명의 전일제 산학겸임교사가 있다. 반도체 생산 라인 실습실이 6개 공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산학겸임교사는 산업 현장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채용 대상으로, 전문 분야와 관련 있는 일부 교과만을 지도할 수 있다. 시간제와 전일제 모두 가능하지만 전일제는 기간제 교사와 동일한 처우를 받는다. 산업 현장의 우수한 인력이 학교로 유입되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에선 반도체 기업과 학교 간의 인력 교류를 확대하는 게 대책이 될 수 있다. 충북반도체고의 경우 마이스터고 전환 직후 2년 동안은 SK하이닉스에서 1주일에 2번씩 현직자가 나와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 중단됐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이후로 마이스터고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함께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감은 “현장 노하우를 전수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실습실을 구축해 놓더라도 고철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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