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위해 맡긴 돈’ 써버리면…대법 “횡령 아냐” 첫 판단

  • 뉴시스
  • 입력 2022년 7월 20일 0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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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행위의 일환으로 돈을 잠시 맡겼다면 그것을 보관하던 사람이 개인적으로 써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B씨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보관하던 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써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의사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요양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B씨 등 2명과 함께 조합을 설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이 추진되면서 A씨는 B씨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보관하고 있었는데, 담보를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던 중 A씨는 일부 투자금을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써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이 B씨 등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A씨 등은 모두 의사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요양병원을 설립하려 해 이들이 맺은 투자약정은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며, A씨가 받은 투자금은 불법원인급여(불법을 원인으로 지급된 돈)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투자약정이 법에 어긋나는 건 맞지만, 투자에 따른 이익분배이므로 반사회적 행위는 아니라는 점에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B씨로선 자신이 투자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민사상 반환청구권을 갖기 때문에 이를 개인적으로 쓴 A씨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항소심은 일부 피해자에 대한 범행은 다른 재판에서 이미 무죄가 확정됐다는 점에서 면소 판결하고 1심보다 줄어든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횡령죄는 재물의 소유자가 신임관계에 기초해 다른 사람에게 위탁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만약 범죄의 준비나 실행을 위한 과정에서 재물이 위탁된 것이라면 횡령죄의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게 대법 재판부 판단이다. 재물을 맡긴 사람에게 민사상 반환청구권이 인정되더라도 횡령죄에 의해 보호받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A씨가 받은 투자금은 무자격자의 의료기관 개설이라는 범죄 실현을 위해 A씨가 맡긴 것이므로, 이들 사이에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즉, A씨를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는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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