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전직 해상자위대 출신인 야마가미 데쓰야가 쏜 총에 맞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아베는 일본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총리로 선출되어 가장 오랫동안 재직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베는 일본에서 이름난 ‘정치 엘리트’ 가문 출신입니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는 1980년대 일본 외상을 지냈으며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됐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이 보입니다.
아베의 외조부는 바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게다가 아베의 외고조부는 조선을 침략했던 오시마 요시마사입니다. 그는 청일전쟁 이전 경복궁을 기습 점거한 전력이 있으며,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군을 이끌고 조선에 상륙했고, 이후 명성왕후 시해 사건까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베는 학생 시절부터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외고조부 오시마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1830∼1859·사진)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고 합니다.
요시다는 일본 에도(江戶) 막부 말기의 무사이자 사상가, 교육자입니다. 그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라는 개인 교육기관을 세우고 신분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제자를 받아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곳에서 배운 제자들이 이후 일본 정계와 국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조선을 침략하는 데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도 그의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요시다는 미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잡혀 감옥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집필한 책인 ‘유수록(幽囚錄)’에서 ‘일본이 국력을 키워 서양한테 당한 것을 만주, 중국, 조선에게서 무력으로 되찾아 오자’고 주장합니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에 퍼져 있던 ‘한국을 정벌하자’는 뜻의 정한론(征韓論)에 힘을 실어주었고, 훗날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이론적 토대가 됩니다. 대동아공영권이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해 동아시아 지역을 서구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주장입니다. 물론 해방은커녕 실제로는 점령지에서 잔혹한 학살과 수탈을 자행했지만 말입니다.
요시다는 근현대를 거치며 일본의 사상적 지주로 추켜세워졌습니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미래를 내다본 선각자’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총리 재임 중이던 2015년 요시다가 제자들을 양성했던 쇼카손주쿠 학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됩니다.
앞서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2차 아베 내각’ 때 이루어진 야스쿠니신사 참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행위, 군대를 가지거나 전쟁을 금지한 일본 헌법 9조(일명 평화헌법) 개정 시도 등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답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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