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이 50일 동안 이어지며 거제 지역 상권이 얼어붙었다. 21일 오전 손님 발길이 끊긴 옥포중앙시장의
한산한 모습. 거제=이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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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살 만해졌다는데, 우리는 더 힘들어졌어요.”
21일 오전 경남 거제 옥포중앙시장. 과일가게 사장 신모 씨(52)는 한산한 시장 거리를 바라보다 “어제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이 50일째 이어지면서 지역 경기가 급격히 냉각됐다는 것. 신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보다도 매출이 10% 넘게 줄었다”고 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거제 인근 지역 상인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파업에 따른 피해가 최대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역 경제가 동반 침체되는 모습이다.
○ “코로나19보다 파업이 더 힘들다”
대우조선 본사가 위치한 거제시 아주동에서 10년째 족발집을 운영하는 박진규 씨(61)는 최근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하청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난달 2일 이후 회식 등이 줄면서 매출이 절반 가까이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미 코로나19 때문에 1억 원 넘게 대출을 받았는데, 월세 내기도 힘들어 1000만 원 정도 대출을 받을지 고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조선소 점거 농성으로 잔업 근무가 크게 줄어든 대우조선 및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이 감소한 것도 상인들의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대우조선에 따르면 정규직 근로자와 협력업체 직원 및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거제시 인구(약 24만 명)의 약 25%인 6만여 명이 대우조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씀씀이가 줄면 거제 상권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의 한 직원은 “파업 때문에 2주 전부터 아예 잔업을 못 하게 됐다”며 “이달 월급은 평소보다 100만 원 가까이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거제 지역 상인과 주민들은 ‘조선소 파업 장기화는 거제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독 게이트를 열어 주세요’ 등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설치하고 파업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 “휴가철 대목 놓칠까 걱정”
거제 지역 상인과 주민들은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붙이며 파업 중단을 호소하고 나섰다. 거제=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장기화된 파업으로 ‘휴가철 대목’을 놓칠까 싶어 우려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거제 지세포항 수변공원에선 29∼31일 ‘바다로 세계로’ 축제가 예정돼 있지만, 벌써부터 예년과 같은 특수를 누리기는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61)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관광객도 줄어든다는데, 파업이 길어지면 인근 지역에서도 안 올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다만 일부 상인들 사이에선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지역 경제도 산다”며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옥포중앙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A 씨는 “요즘 청년 중에 누가 비정규직으로 푼돈을 받으며 조선소에 남아있겠느냐”며 “거제에 젊은 층이 유입되려면 고생하는 만큼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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