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체중인데 식욕억제제 처방되나요” 병원 4곳서 넉달치 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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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직접 병의원 돌아보니

기자가 하루 동안 처방받은 4개월 치의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 식욕억제제와 기타 약물.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기자가 하루 동안 처방받은 4개월 치의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 식욕억제제와 기타 약물.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마약류 중 하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식욕억제제’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이어트용으로 인기를 끄는 ‘식욕억제제’는 국내 병의원 처방으로 구할 수 있어 다른 마약류에 비해 문턱이 낮지만 중독성이 높다. 특히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의료기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안전사용 기준을 지키지 않고 무분별하게 처방하면서 10대 청소년들에게까지 불법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식약처 안전기준 ‘무용지물’
“××타민(식욕억제제) 처방되나요?”

동아일보 취재진이 이달 중순 서울, 대구, 부산, 전북 전주, 제주 등의 전국 32개 병의원에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 가능 여부를 물었더니 단 2곳만 “체질량지수(BMI) 검사 후 기준 이상이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나머지 30곳은 별다른 설명 없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식약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비만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또 BMI 30 이상인 환자에게 4주 이내 단기 처방하고, 최대 3개월 이내로만 사용해야 한다. 약물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오·남용 시 환각, 환시, 환청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MI 19로 정상 체중인 기자가 서울 강남구의 내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병의원 4곳을 직접 돌아보니 약 2시간 만에 식욕억제제 4개월 치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정상체중인데도 기준치를 한 달이나 넘는 용량을 손쉽게 손에 쥔 것이다.

식약처 기준대로 처방에 앞서 BMI 검사를 진행한 병의원은 4곳 중 1곳에 불과했다. A내과 의사는 “약 먹을 정도는 아닌데 살을 빼고 싶으냐”고 묻더니 곧바로 2주 치를 처방했다. B피부과 의사는 기자가 “두 달 치 처방도 가능하냐”고 묻자 “보통 그렇게도 많이 가져간다”며 두 달 치를 처방했다.

식약처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이 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128만2615명에 달한다.
○ 식욕억제제 복용 7년째…“약 없으면 생활 어려워”
처방의 문턱이 낮다 보니 중독도 쉽다. 울산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1)는 25세에 처음 식욕억제제를 접한 뒤 현재까지 7년째 복용 중이다. 처음엔 폭식을 고치려고 복용을 시작했지만 점차 약물의 각성효과에 중독돼 끊을 수 없게 됐다. 이 씨는 “이젠 약이 없으면 생활이 어렵다”며 “약을 먹으면 모든 일이 다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반면에 끊는 순간 급격한 우울을 경험한다”고 했다.

최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끊게 되면 우울감을 넘어 ‘파멸감’이 밀려온다”며 “강력한 세로토닌(신경전달물질) 작용제이기 때문에 복용을 멈추면 반동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대들 사이에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달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불법 유통한 10∼30대 62명을 검거했다. 이 중 13∼18세 청소년이 49명으로 79%였다. 식약처는 만 16세 이하에게 마약류 식욕억제제 투여를 금지하고 있다.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장은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명 ‘뼈말라족’으로 불리는 극단적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어 마약류 식욕억제제에 손을 대는 학생이 많다”며 “어린 나이에 마약류를 접할수록 더 쉽게 중독될 수 있고 다른 약물로까지 넘어갈 수 있다. 지금이 예방 교육을 강화할 골든타임”이라고 지적했다.

#식욕억제제#향정신성의약품#식약처 안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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