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운전 중 가벼운 접촉 사고를 당한 A 씨(36)는 한의원을 찾았다. 목과 허리에 염좌가 생긴 경미한 부상이었지만 한의원은 8일간 입원하고 이후에도 계속 통원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A 씨는 올해 6월까지 무려 150차례 한의원을 방문해 부항, 약침, 추나, 경락 등 이른바 ‘세트 치료’를 받았다. 입원비와 치료비 등으로 발생한 1070만 원은 전액 자동차보험금을 청구해 받았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의 한방 진료비가 1조3000억 원을 넘어서며 사상 처음 양방 진료비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한방병의원이 차보험의 진료 수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악용해 과잉 진료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진료비(2조3916억 원) 가운데 한방 진료비는 1조3066억 원으로 54.6%를 차지했다. 양방 진료비는 1조850억 원으로 45.4%였다. 2017년 5545억 원에 불과했던 한방 진료비가 지난해까지 5년간 135% 급증하며 같은 기간 10.7% 줄어든 양방 진료비를 처음으로 추월한 것이다. 이 기간 자동차 사고가 74만6777건 감소했는데도 한방 진료비는 대폭 늘었다.
이 같은 급증세는 한방병의원을 찾는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부상 정도가 경미한 경상환자(상해급수 12~14급)의 1인당 한방 진료비는 96만1000원으로 양방(33만8000원)의 2.8배나 됐다.
차보험의 진료 수가 기준이 건강보험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아 일부 한방병의원들이 경상환자를 대상으로 과잉 진료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약침, 부항, 뜸 등 효과가 비슷한 한방 진료를 동시에 한 뒤 보험금을 함께 청구하는 ‘세트 청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일부 한의원은 ‘본인부담금 0원’, ‘초호화 상급병실’ 등을 홍보하며 환자를 유인하고 있다.
특히 한방 첩약에 대한 증상이나 용량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아 최대치(현행 10일치)로 처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무조건 첩약을 최대치로 처방해 환자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최근 서울의 한 한의원에선 환자가 첩약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의원 앞에 반납함까지 설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 등은 한방 진료 항목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국토부가 한국한의약진흥원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가 최근 나왔지만 한방 진료의 시술 횟수나 처방 기간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두고 보험업계와 한방 의료계 간의 이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상환자에 대한 과잉 진료는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사회적 비용을 높인다”며 “한방 치료의 효용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보험금 지급 기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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