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에 300㎜가 넘는 비가 내리는 등 수도권과 강원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가 쏟아졌다. 건물과 도로, 차량, 선로가 침수되는 피해가 잇따랐고, 시민들이 불어난 물에 고립됐다가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했다. 경기 시흥에선 공사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작업하던 근로자 1명이 감전돼 숨졌다.
서울은 이날 저녁 무렵부터 동작 구로 서초 강남구 등 남쪽 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상세관측지점(AWS) 기준 이날 오후 9시까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305.0mm의 비가 내렸다. 우리나라 연간 총 강수량이 1000~1300㎜인 것을 감안하면 1년간 내릴 비의 20~30%가 단 하루 새 쏟아진 셈이다. 구로구 궁동 243.0mm, 동작구 사당동 241.5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각각 시간당 130mm, 100mm의 집중 호우가 내린 동작구와 강남 일대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강남구 신논현역과 논현역 먹자골목 일대 1층 음식점에는 쏟아진 비로 물이 1m 이상 차올랐다.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이던 이재중 씨(23)는 “15분 만에 비가 땅부터 골반 높이까지 차올라 술집 안에 있는 의자 등 모든 게 떠다녔다”며 “전선이 물에 닿으면 위험할 것 같아 손님들이 모두 2층으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인근 음식점 사장 정모 씨는 “오래 영업해 왔지만 장마라고 해도 이렇게 가게 안으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내 일부 매장이 침수됐고 삼성동 코엑스 내 도서관과 카페 등엣는 누수 피해가 발생했다.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폭우로 인해 하수구가 역류한다는 신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6시 반부터 동부간선도로 전 구간이 전면 통제됐고, 오후 9시 26분경 서울 관악구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대피 공지가 내려졌다.
퇴근길 시민들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시민들은 길에서 신발을 벗은 채 허리 높이까지 차오른 빗물을 뚫고 이동했다. 침수된 차량을 거리에 세워두고 대피한 시민도 적지 않았다. 신논현역 인근에서 운전하던 A 씨는 “오후 9시부터 차가 뚜껑 부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침수돼 차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대부분 사이드미러 높이까지 차올랐다”며 “운전석에서 내리기도 힘들 정도로 물이 차올라 결국 차를 세우고 한 음식점으로 대피했다”고 했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40분경 지하철 1호선 구로역~부천역 구간 상하행서 선로 일부가 침수돼 열차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7호선 이수역은 승강장에 발목 높이까지 빗물이 들어차면서 열차가 무정차 통과했다.
경기와 인천에서도 침수 피해가 이어졌다. 이날 경기 부천 중동 225.0mm, 인천 부평 구산동 194.5mm, 경기 가평 조종면 193.5mm 등 많은 비가 내렸다.
이날 소방본부에 따르면 오후 1시경 인천 부평경찰서와 주안역 인근 도로에선 빗물이 사람의 엉덩이 높이까지 차올라 차량이 적지 않게 침수됐다. 경기도에서는 국도 3호선 등 도로 35곳이 폭우로 통제됐다.
경기 구리시와 하남시, 강원 철원군 등에서는 주택과 상가 건물 침수가 잇따랐다. 인천에서는 부평구 십정동의 한 주택 지하 가구가 침수됐고, 부평동의 한 건물 지하 태권도 도장에서는 물이 차올라 원생 등 10여 명이 대피했다.
정전 피해도 이어졌다. 경기 부천시에선 병원 등이 입주한 건물 지하가 침수되면서 전기 공급이 끊겼다. 이로 인해 환자와 의료진 등 340여 명이 이날 오후 1시 30분경부터 5시 20분까지 약 4시간 동안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서울 강동구에선 낙뢰로 241채 규모 아파트 단지의 전기 공급이 40분간 중단됐다.
인명 사고도 발생했다. 이날 낮 12시 경기 시흥시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 현장에서 전기 그라인더로 철근 절단 작업을 하던 50대 중국인 A 씨가 감전돼 숨졌다.
경기 양주시 광백저수지에선 이날 낮 12시 반경 1명이 불어난 물에 고립됐다가 119 구조대원에게 구조됐다. 강원 철원군 담터계곡에서도 4명이 탄 차량이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연천과 포천, 안산, 과천 등에서도 불어난 물에 고립된 시민 6명이 구조됐다.
정부는 이날 오후 9시3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비상 1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하고 위기 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했다.
이날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쏟아진 건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 만들어진 정체전선이 한반도 상공을 가득 메운 ‘물주머니’를 터뜨렸기 때문이다.
10일까지 사흘간 예상강우량은 수도권과 강원 내륙 산지 등 100~250㎜, 강원 동해안과 충청 남부, 경북 북부 50~150㎜, 전북 20~80㎜다. 지역에 따라 350㎜ 이상의 비가 내리는 곳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시간당 강수량이 인천은 84.8mm로 역대 3위, 파주는 63.1mm로 역대 2위를 기록하는 등 곳곳에서 최대 강수량 수치가 갱신될 수도 있다고 기상청은 전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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