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눈을 감은지 2년. 박현숙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려고 발버둥쳤다. 버티고 버텼지만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시어머니와 딸 소윤 앞에서 2년 간 삼켜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얼마 후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순직자 예우와 유가족 지원 담당자 조인담 주임이었다. 느닷없이 소방관 유가족들이 모이는 캠프에 참여하라면서 전화를 끊은 인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던 현숙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9월 17일.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에 인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순직 소방관 예우와 유가족 처우를 담당하는 인담에게 이 시간에 전화가 올 일은 많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받았다.
“주임님, 강원 강릉에서 화재 진압 중에 순직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방청 상황실에서 걸려온 긴급 전화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근할게요.”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서 외청(소방청)으로 나온 지 두 달 만에 생긴 일이었다. 인담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순직 사고 업무를 처음으로 맡게 된 것이다.
장례식장에 놓을 훈장을 준비해 강릉으로 먼저 보냈다. 윗선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대통령, 총리 명의의 조화와 조의금을 신청했다. 강릉에는 이틀 뒤 영결식 당일 아침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정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방관 두 명의 얼굴이 수천 송이의 하얀 국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위에 적힌 하얀색 글씨.
고 이영욱 소방경, 고 이호현 소방교.
‘보상금 부자’ 됐다며? 툭 던진 한마디, 비수가 됐다
‘강릉 석란정 화재’서 남편 잃은 연숙… 시댁식구가 꺼낸 보상금 헛소문 목숨값부터 따지는 현실이 원통… 갈수록 선명해지는 남편과의 추억 ‘당신 없는 세상 모든 것이 싫어요’… 오늘도 ‘소방청 추모관’을 찾는다
○ 남편이 받을 수 없는 편지
아내 이연숙은 영욱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몇 달 전 강원 지역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정강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다치고서도 집에 돌아와 웃던 남편이었다. 소방관으로 30년 가까이 일하며 홀로 외지에 있을 때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했던 그이였다. 휴가 때 큰불이 나면 연숙과 여행을 떠났다가도 소방서로 부리나케 돌아가던 양반이었다.
‘이렇게 빨리 가려고 평생 줄 정을 미리 쏟아준 걸까.’
영욱과 연숙은 서로에게 늘 다정했다. 어쩌다 연숙이 홀로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직원들이 웬일로 혼자 왔냐고 물었다. 비가 오는 날엔 안목해변으로 드라이브를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커피거리를 거닐었다. 강릉 어디에나 남편과의 추억이 묻어 있었다.
연숙이 그토록 사랑하는 영욱을 국립대전현충원에 묻고 온 다음 날이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이 너 벼락부자 됐다고 그러더라? 나라에서 주는 보상금이 그렇게 많다던데? 너는 이제 딴 놈 만나서 잘 살겠다.”
연숙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명절마다 함께 웃던 시댁 식구는 영욱이 떠나자마자 연숙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녀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일시 보상금은 2억 원 수준. 다른 돈을 받은 게 있다면 전국 소방관들이 1만 원씩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조의금 정도다. 시댁 식구가 연숙에게 한 이야기는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허위사실로 목숨값부터 따지고 드는 현실이 연숙은 원통했다.
‘남편만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보상금 같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궂긴 일은 연이어 찾아왔다. 남편이 떠나고 한 달 만에 시누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숙은 초췌한 얼굴로 빈소에 앉아 있었다.
“이 집 남동생이 소방관인데 지난달에 죽었잖아.”
“그러면 지난달에 죽은 동생이 누나도 데려간 거야?”
얼굴도 모르는 조문객들은 그 소방관의 아내가 빈소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숙은 슬픔을 속으로만 삼킨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속으로 되뇌었다.
‘내 남편은 그저 불을 끄러 갔을 뿐이야. 그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남편의 영결식이 끝난 직후 외아들 이인이 사는 원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도 연숙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복도에서 발소리라도 들리면 영욱이 바뀐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연숙은 퇴근한 아들과 마주 앉아 남편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억을 나누곤 했다. 처음엔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양만큼 슬픔이 옅어지지는 않았다. 연숙은 어느 날 “아들 앞에서 이렇게 맨날 울면 안 되는 건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둘 사이에 영욱 이야기는 점점 줄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유를 물어보면 “친구를 만났다”거나 “야근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들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다를까. 연숙은 아들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으니 편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남편을 잊어가는 것 같아 야속했다. 하루는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너는 아빠 생각 안 나?”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연숙을 바라봤다. “엄마, 내가 아빠 자식인데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그렇다고 계속 울 순 없으니까….”
“네가 표현을 안 하니 아빠를 잊은 것 같아서 서운하잖아.”
“내가 아빠를 어떻게 잊어요.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사는 거죠. 엄마 앞에서 매일 아빠 보고 싶다고, 슬픈 표정 지으면 엄마만 더 힘들잖아요….”
감정을 꾹꾹 담아 하는 말에 연숙은 뭐라 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연숙의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과의 기억은 매일 그녀의 몸과 마음을 후벼 팠다. 잠을 청하기 위해 홀로 술을 마셔 봐도 3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연숙은 순직 소방관 추모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다고 연숙은 느꼈다. 떠난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좋았다.
‘당신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요. 그래서 밖을 잘 안 나가게 돼요. 당신의 빈자리가 점점 더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는 당신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네요.’(2018년 1월 27일 0시 27분)
○ 아들의 목숨값을 묻는 사람들
연숙에게서 영욱을 앗아간 건 경포호 앞 작은 목조 건물에서 난 화재였다. 그날 석란정에선 화재 신고가 두 번 접수됐다. 화염과 싸우고 돌아온 소방관들은 불이 다시 났다는 신고를 받고 두 시간 만에 다시 출동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건물 바닥에서 나는 듯했다. 팀장인 영욱이 마루를 확인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임용 8개월 차 막내 이호현이 영욱을 따라 들어갔다.
“시너인가?” 소방관들은 본능적으로 가스 냄새를 느꼈다. 연기도 솟아올랐다. 마룻바닥을 뜯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너 방화복 위에만 입었잖아. 이제 물길 트러 가니깐 얼른 나가.” 호현은 화재 진압 지원을 나온 소방학교 동기를 내보낸 뒤 영욱과 함께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호현이 형!!”
목재 건물을 지탱하던 나무더미들이 순식간에 영욱과 호현을 덮쳤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모두 달려들어 18분 만에 이들을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냈다. 심폐소생술을 받는 호현의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영욱과 호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호현의 사촌들은 소방서 직원들에게 따졌다. 그 위험한 곳에 왜 소방관들을 들어가게 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가 조카들에게 소리쳤다.
아들 앗아간 사고, 왜 일어났는지…끝내 알 수 없었다
‘강릉 석란정 화재’서 아들 잃은 광수… “사고원인 밝혀달라” 소방서 방문 “보상금 부족한가요” 예상 못한 말… 화났지만 참았다, 아들 명예 위해 친구도 친척도 만남 피하게 됐다… 외로울 때면 아들의 추모비 찾아
“너희들 조용히 안 해? 내가 가만히 있는데.”
광수는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조문객을 맞았다.
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며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아들을 소방관의 길로 이끈 건 광수 자신이었다. 아들에게 해양경찰이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군대도 해병대를 나왔으니 어울리지 않겠나 싶었다. 곰곰이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던 호현은 어느 날 말했다.
“아빠, 내 길을 찾았어.” “뭔데?”
“나 소방관 할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대신 후회는 하지 마.”
호현이 떠난 뒤, 몇 번이고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 매일같이 석란정을 찾는 아버지
석란정에 누가 일부러 불을 냈을까. 아니면 갑자기 불이 난 걸까. 경찰은 사고 한 달 만에 수사를 마무리하며 화재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소방본부도 방화가 의심된다는 내용으로 조사를 끝냈다. 광수는 아들을 앗아간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광수는 경찰서와 소방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확한 원인을 밝혀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 소방서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려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아버님, 혹시 돈이 부족하셔서 그러십니까?”
광수는 소방서 간부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았다. 가족들과 보상금이나 연금 등을 나누는 절차가 끝나지 않은 때였지만, 소방서에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보상을 더 받고 싶어서 따지는 줄 아는구나. 내가 말을 꺼내면 안 되는 일이었구나.’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허공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돌아서 소방서를 빠져나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해 바닥에 뒹굴고 싶었다. 누군가가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 원통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모든 걸 표현하면 아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겠지. 화가 나더라도 그저 참아야 했다.
아비보다 먼저 떠난 아들은 매달 돈을 보냈다. 임용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순직했기에 호현의 연금은 큰 액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광수는 그 돈이 낯설고 무서웠다. 들어오는 연금은 그대로 적금으로 빠지도록 했다.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슬픔을 삼키다가 지칠 땐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하루는 친구가 광수에게 말을 꺼냈다.
“근데, 언제부터 네가 목걸이를 차고 다녔어?”
친구는 광수가 차고 있는 금목걸이를 바라봤다. 아들이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월급에서 매달 20만 원씩 꼬박꼬박 낸 계모임에서 받은 목걸이였다. 그저 광수의 순서가 왔을 뿐이었다. ‘아들 목숨값으로 금붙이 차고 다니네.’ 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쏘아붙이는 것 같았다. 뭐라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할수록 구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목걸이를 벗어 던졌다. 그때부터 광수는 말수가 점점 줄었다. 친구나 친척들도 애써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대신 광수는 외로움이 커질 때마다 석란정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아들과 영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가 있는 곳.
이틀에 한 번씩 새벽같이 일어나 추모비를 닦고 주변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그곳에 있는 소나무엔 여전히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추모비를 예쁘게 꾸며보려 꽃잔디를 심어도, 타버린 흙을 몇 달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근무지. 이곳에만 오면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마지막을 배웅한 영결식이 떠오른다.
“영욱이 형님! 호현아!” 영욱, 호현과 같은 119센터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대표로 조사를 읽었다. 강당 안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인담도 눈물을 흘렸다.
헌화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던 연숙은 몇 걸음 걷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직원들이 붙어 그녀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그녀를 대신해 아들이 하얀 국화를 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고 왔다. 뒤이어 광수가 단상에 올랐다. 성큼성큼 걷던 발걸음이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멈췄다. 광수는 꽃을 내려놓고 외쳤다. “호현아!”
아들을 향한 광수의 마지막 인사가 추모 음악에 파묻혔다.
인담은 멀찍이 떨어져 연숙과 광수를 지켜봤다. 곧 그들에게 연락해 보상 절차를 꺼내야 했다. 미리 인사를 해두면 앞으로 일 처리가 조금 수월할지도 몰랐다. 인담은 가까이 다가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무너진 가족들. 홀로 남겨진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 “쟤네도 아빠 없어요?”
인담이 소방관 유가족을 모이도록 한 서울 행사장엔 수십 명이 와 있었다. 소방관 가족을 잃은 배우자나 자녀들이었다.
박현숙은 주위를 둘러봤다. 옆자리엔 모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서로를 소개할 시간도 없이 일정이 시작됐다. 카드 게임, 소방차 그리기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 탓에 배고프고 졸리다고 칭얼거리는 소윤을 보며 현숙은 유독 피로감을 느꼈다.
‘참 어설프다, 어설퍼. 이런 건 왜 하는 거야.’
현숙이 성의 없이 손뼉을 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억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른들은 자신처럼 영혼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은 왠지 소윤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망설이던 현숙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기가 몇 살이에요?”
모두 세 살이라고 했다. 소윤과 나이가 같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소윤도 옆에 있는 아이들이 동갑내기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더니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행사장과 호텔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여기 애들은 다 아빠 없어요?”
현숙은 깜짝 놀라 아이가 소리친 곳을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인담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인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한 번 질문했다. “쟤네도 저랑 똑같이 아빠가 없는 거예요?”
인담이 대답을 망설이자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대신 답했다. “그래, 우리도 아빠가 없어. 너랑 똑같아.” 아이는 신이 나서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여기 있는 애들은 다 나처럼 소방관 아빠 없대! 나랑 똑같대!”
현숙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슬픈 이야긴데, 저렇게 기뻐할 일인가.’
여태껏 엄마 뒤에 숨어서 낯을 가리던 아이들도 슬그머니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마음을 연 아이들의 표정이 전보다 밝아졌다. 어른들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른 애들이 소윤이한테 아빠 없냐고 물어봤으면 마음이 아팠을 텐데…. 진짜 다 똑같은 처지라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네….”
묘한 감정을 현숙은 느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 그녀는 문득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https://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송은석 기자 ▽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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