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강원 강릉의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갔던 이영욱 소방경과 이호현 소방교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망했다. 영욱의 아내 이연숙과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홀로 아픔을 삼킨 채 살아갔다. 그리고 소방청 조인담 주임의 설득으로 딸 소윤과 함께 소방관 유가족 모임에 참석한 박현숙. 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숙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얘네도 소방관 아빠 없어요?”
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소방관 유가족 모임.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태백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소화하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기억 외엔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소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
현숙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만들어둔 단체 카톡방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소방관 아내와 남편 등 12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잠시 활발해지다 곧 잠잠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던 현숙은 ‘쩝’ 소리를 냈다.
이틀 뒤였다. 현숙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관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
‘주변에 한부모 가정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안동 산다고 했던 엄마네….”
레크리에이션 때 현숙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소윤과 동갑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답장을 썼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시간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같은 슬픔끼리 만났다…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2018년 출범 ‘마음돌봄 캠프’ 계기, 또래 유족들 단톡방 ‘마돌캠’ 개설 각자의 고민 꺼내며 유대감 형성… 망설였던 ‘자녀 심리상담’도 시작 모임 낯가리던 아이들 금세 친구돼 “보다 많은 가족 참여하게 합시다”
○ 같은 모양의 슬픔
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하재웅] [오후 3:26]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해지하고 왔어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휴대전화냐고 계속 물어보는 직원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
현숙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기억이 났다. 유일한 아빠였다. 그는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소방관 부부였던 재웅은 몇 달 전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출근하기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외에는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현숙의 코끝이 찡해졌다.
[김포맘] [오후 3:30] 음 ㅠㅠ 맘이 안 좋으셨을 듯. 저도 신랑 폰 해지할 때 그 마음이 생각나네요∼ 괜찮아요! 그런 마음 우리 말고 누가 알아주겠어요.
[서울맘] [오후 3:41] 저는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남자가 그 전화를 받는 게 순간 너무 서글퍼서 대성통곡을 했네요. ㅠㅠ
[박현숙] [오후 4:26] 재웅님 미안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현숙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넘어 끝난 대화는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다시 시작됐다.
“엄마, 전화기 그만 봐!”
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현숙에게 소리를 쳤다. 현숙은 소윤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안동맘] [오후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마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인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방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다음 사업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심리상담 지원이었다.
[안동맘] [오후 1:29] 심리상담을 하면 내용이 기록에 자세히 남나요? 상담 간다고 하니 식구들이 기록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
[조인담] [오후 1:34] 1. 상담센터는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예민한 개인정보가 남지 않음. 2. 상담은 일단 무조건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 생각보다 상담사님 의견에 공감됨.
현숙도 망설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주변에서 상담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상담사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싫었다.
카톡방에선 인담의 설득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온 가족들이 남긴 후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숙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번 가볼까.’
현숙은 소윤을 데리고 인담이 연결해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감정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
그동안 현숙이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를 상담사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윤도 친구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현숙은 소윤이 아빠에 대해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윤아,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현숙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도 많이 보고 싶지?”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
소윤의 엉뚱한 대꾸에 현숙은 울다가 웃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돌캠 가족들은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소방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가족들은 즉석 모임을 했다. 각자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주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형제자매처럼 생각했다.
[안동맘] [오전 9:52]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
가족들이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인담은 후원 기업과 기관에 선언했다.
“우리 이거 계속하시죠. 정기적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해요.”
○ 다른 이에게 내민 손
마돌캠 결성 직후 현숙은 경기 김포에서 소방관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출동을 나간 수난구조대의 보트가 전복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방관 한 명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자녀를 남겨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현숙은 인담에게 전화했다.
“주임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다른 소방관 가족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조의금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해야 할까요.”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
현숙은 2년 전을 떠올렸다. 남편의 빈소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자신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 그 마음은 현숙이 제일 잘 알았다.
현숙은 인담을 통해 조의금을 전하고 마돌캠의 존재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가족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얘기를 조의금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얼마 후 인담이 먼저 현숙에게 전화를 했다.
“소윤 엄마, 원주에 이연숙 여사님이라고 계세요. 소방관 남편이 1년 전에 강릉에서 순직했는데,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보세요.”
현숙도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남편 순직 1년 후 강릉 경포호 앞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 뉴스를 보며 현숙도 남편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영결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은 정말 공허할 텐데. 그때 현숙은 당장 강릉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가족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겁이 났다. 이번에 인담의 전화를 받고 현숙은 마음을 먹었다.
공감의 퍼즐을 찾은 사람들 “더 아픈 사람 도울 것”
마돌캠 만든뒤 김포서 소방관 순직… 현숙 “다른 유족에 도움되고 싶다” 인담 통해 조의금 전달-마돌캠 소개… 연숙과도 알게 되며 연락 이어가 7월 서울서 코로나로 미뤘던 모임… 아이도, 어른도 서로를 안아줬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해 10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소방관 합동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다. 현숙이 묘역에 도착하자 남편 묘비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연숙 여사님 맞으시죠? 조인담 주임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태백 허승민 소방관…?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편들이 같은 소방본부 소속인데, 여태 인사도 못 했네.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매일 집에만 있는데….”
그때부터 현숙과 연숙은 연락을 이어갔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나이가 달랐어도 소방관 남편을 잃은 아픔은 똑같았다.
“소윤 아빠가 소파 앞에 누워서 야구 중계를 봤는데, 딸이 그 자세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거예요. 그걸 안 보고 자랐는데, 신기해갖고.”
“아니, 우리 손녀도 식성이며 이런 게 다 할아버지를 닮았어. 하는 짓도 그렇고. 진짜 깜짝깜짝 놀라. 아주 웃긴다니까.”
연숙과 현숙은 서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전화를 했다. 한번 통화를 시작하면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현숙과 연숙 모두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올해 2월. 현숙은 연숙의 권유로 평생 살아왔고 남편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태백을 떠나 원주로 이사를 왔다. ‘마돌캠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이젠 정말 상상도 안 된다.’
현숙은 마돌캠 가족들을 만난 것이 운이라고 생각했다. 인담이 가족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주임님, 마돌캠을 비영리단체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순직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위로해주고…. 마돌캠 2기, 3기 이렇게 계속 만들면 좋잖아요.”
인담은 현숙의 이야기가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
현숙의 아이디어는 미국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이자 제도였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과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은 남겨진 가족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픔을 가진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문화다. 국내에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1년에 한 번씩 소방관 유가족과 추모식을 열지만 미국처럼 가족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인담은 현실적인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인담은 갑작스러운 인사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제도나 예산도 없었다. “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현실적으로 큰돈도 필요하고요. 저도 더 고민해 볼 테니, 다른 가족들이랑 논의도 해보고 잘 생각해 봐요.”
인담의 답을 들은 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흩어진 조각이 모였다
2022년 7월 1일. 마돌캠 4주년. 현숙은 원주에서 서울행 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
소윤은 좌석 끝에 걸터앉은 채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열차에 앉아도 발이 바닥에 닿질 않았는데 어느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에 현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코로나19 탓에 거의 1년 만에 열린 마돌캠 모임이었다. 소윤과 묶여 세쌍둥이로 불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둘도 왔다. 소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잠시 엄마 뒤에 숨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튿날 마돌캠 가족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향했다.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붙잡고 걸었다. 회전목마를 탈 때도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 고양이다? 야옹.” 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소윤이 갑자기 양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
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 “멍멍! 멍멍! 멍멍!”
까르르. 세 아이가 동시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롯데월드에 이어 수영장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숙소에 모여 야식을 시켜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
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변호사와 같이 자료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소방관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꼈는지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일요일이 왔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박 3일간 6명의 아이를 함께 돌본 마돌캠 가족 5명은 서울역 근처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키우는 안동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너무 덥다. 우리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
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호수 등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또 가을에 모일 일정을 잡았다.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내려가야 하는 안동맘이 현숙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숙은 같이 손을 흔들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안동맘을 꼭 끌어안았다. 안동맘도 현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 많았어. 건강히 지내고 있어.”
현숙과 안동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쌍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줬다.
현숙이 뒤이어 기차를 타러 뛰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숙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현숙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숙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윤의 손을 잡고 남은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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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전영한 기자 ▽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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