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공공임대주택이라도 보증금이 상당히 필요할 텐데, 저로선 감당이 안 될 거 같습니다.”
서울 동작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7년째 세 들어 살고 있다는 김모 씨(69)는 16일 자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보증금 1000만 원이 전 재산이고 기초생활수급자 생계 급여를 빼면 수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 씨는 “지금 월세 20만 원도 간신히 내고 있다. 정부가 월세나 보증금 등을 일부 빌려준다고 해도 지상층으로 이사하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서울의 반지하 주택에서 침수로 인한 사망자가 이어지자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15, 16일 반지하 거주민 지상 이주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반지하 거주 주민과 전문가 사이에선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 “공공임대주택도 보증금 부담”
정부와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반지하 주민들이 입주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옮길 때 필요한 추가 보증금과 월세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폭우로 50대 여성 사망자가 발생한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택의 경우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이었다. 하지만 16일 동아일보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서울에서 모집 중인 공공임대주택 2887채의 보증금과 월세를 전수 분석한 결과 보증금이 500만 원 이하인 곳은 6채(0.2%)에 불과했고, 월세가 20만 원 이하인 곳도 48채(1.7%)에 그쳤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반지하 주택 주민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노인 등 취약계층은 높은 보증금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거주자가 입주할 때 필요한 보증금을 무이자 또는 낮은 금리로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대출한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아 이주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에 사는 직장인 임모 씨(27)는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 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직장이 있는 강남역으로 출퇴근하기 편하기 때문”이라며 “지상층이라도 직장과 거리가 멀면 이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 “월세 지원 끝나면 반지하로 돌아가야”
서울시는 전날 공공임대주택 공급 및 입주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이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상층 주택으로 이주할 경우 최장 2년간 월세 2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악구 신사동의 반지하 주택에 사는 주부 박모 씨(52)는 “월 20만 원을 받으면 당장은 지상층으로 이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수입이 불안정해서 2년 뒤 지원이 끊기면 다시 반지하로 돌아와야 할 거 같은데, 이사가 선뜻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악구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박모 씨(57)는 “반지하 주택을 구하는 이들은 소득이 적거나 없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월세 지원이 끊기면 다시 반지하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토부는 16일 연말까지 재해 취약 주택 실태를 조사해 공공임대 이주 수요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반지하 거주자가 이주를 원치 않는 경우 침수 방지시설과 여닫이식 방범창 설치 등 안전보강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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