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소값이 따블이에요. 따따블. 비가 많이 와서 채소들이 다 떠내려가서 물량이 없어요. 날씨가 이렇게 더우면 평지에서 키우는 채소들은 다 녹습니다. 고랭지에서 나는 채소가 아니면 살 수가 없으니까 가격이 오를 수밖에요.”(50대 농수산물 도매업자 정모씨)
# “지난달만 해도 오이가 3개에 2000원이었는데 한 달만에 5000원으로 뛰었어요. 오늘이 그나마 싼 편이라고 하는데도 너무 비싸요. 지난해보다 추석 상차림에 예산이 2배 넘게 들 것 같네요.”(60대 주부 장모씨)
115년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폭염까지 겹치면서 채소 출하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채소 자체를 구할 수가 없다며 ‘채소 대란’이 올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추석을 앞두고 가격이 더 오를 수 있어 ‘2차 밥상물가 쇼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폭염·폭우에 수확량 감소…“배추 절반은 버려야 하는데 가격은 그대로”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은 배추, 감자, 시금치, 상추, 당근 등을 구매하러 온 자영업자, 소매업자, 주부들로 붐볐다. 대다수는 예산보다 적게 채소를 구입했고, 가격표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도매업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손님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 손님들은 “미나리, 얼갈이 한 단을 다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 반만 사가겠다”거나 “시든 배추를 너무 비싸게 받는 것 아닌가. 조금만 가격을 깎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찾은 주부 장모씨(63·여)는 “나물을 사러 왔는데 폭염 때문에 나물이 다 녹아서 나물을 살 수 없었다”며 “가격이 똑같은 채소는 3개에 2000원하는 가지 밖에 없었다. 추석이 코앞인데 물가가 자꾸 올라서 걱정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강남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29)도 “배추가 ‘금추’라고 해서 싸게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왔는데 가격대비 품질이 좋지 않아보였다”며 “상한 부분을 다 뜯어내면 절반만 남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치에 배추 대신에 무를 더 많이 넣는 식으로 레시피를 바꿔야 할지 고민이다”고 호소했다.
◇배추 한 포기, 한 달새 40%↑…“양파, 마늘 시골에 사람 없어서 작업 못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35년 간 도매업을 해온 정모씨(57)는 “두달 전에 비해 채소 값이 따블로 올랐다”며 “양파, 마늘 등은 시골에 사람이 없어서 작업을 못하고 있어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수산물 도매업자 이모씨(40)도 “고랭지가 있는 강원도 쪽에서 나오는 채소는 그나마 살아서 나오지만, 평지에서 재배되는 채소들은 잎사귀와 뿌리가 다 녹아버린다. 날씨가 30도를 넘어가버리면 배추가 햇볕을 견디지 못해서 잎사귀가 다 죽어버리기 때문”이라며 “배추는 입고량이 아예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가락시장은 24시간이지만 요즘은 장마 때문에 농산물 가격도 비싸고 살 만한 것도 없어서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다”며 “채소 시세는 매일 바뀐다고 하지만 폭우·폭염·인력난이 겹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최근 전국에 호우가 쏟아지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비료 등 생산비가 오르면서 채소 등 전통시장 도매가가 상승했다.
전날(16일) 기준 배추 가격 한 포기 소매가격은 지난 12일 기준 6865원으로 한 달 전인 4879원보다 40.7% 올랐다. 무 또한 개당 3118원으로 한 달 전 2270원보다 37.4% 올랐다.
추석 대표 과일인 사과와 배 가격 또한 평년 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과(후지) 10개 가격은 3만357원으로 평년 가격인 2만2995원보다 32.0% 올랐다. 배(신고) 가격은 4만1096원으로 평년 3만7606원보다 9.3% 비싸다.
문제는 채소값 인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aT 관계자는 “배추 등 일부 품목은 향후 무름병 등 병해충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생산량 감소가 점쳐진다”며 “공급량 하락으로 일부 품목은 당분간 높은 가격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