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분야 학과 신·증설 요건을 완화하며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본격화했다. 다만 이처럼 인재 규모를 늘리는 데 치중한 정책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의 후속조치로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대학에서는 교원확보율만 100% 충족하면 첨단분야에 한해 학과를 신·증설할 수 있게 된다. 기존에는 교지(땅), 교사(건물),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등 4대 교육여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가능했다.
대학설립·운영규정의 완화로 첨단분야 학과 신·증설을 위한 족쇄는 풀렸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원 늘리기’ 중심의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흘러나온다.
우선 인재 양성 규모에 대한 이견이 여전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최근 반도체 인력수요 전망이 정부 내에서 3.5배 차이 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산출한 수요에 기초한 반도체 분야 인력수요 전망에서는 2031년까지 10년간 반도체 제조업의 인력수요가 연평균 5.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7월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추산치를 활용했다.
이에 비해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발표한 ‘2020~2030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서 10년간 반도체 제조업 인력수요의 연평균 증가율을 1.6%로 내다봤다.
정의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와 반도체 방안의 인력 수요 연평균 증가율은 3.5배 차이를 보인다”며 “과잉공급이 발생하면 사업체 입장에서야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겠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학설립·운영규정을 완화하는 식의 정원 늘리기가 교육의 질에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일정 수준의 교육 여건을 갖추기 위한 기준을 낮춰가면서까지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린다는 건 학생 수 늘리기에만 급급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교육의 질 낙후가 초래될 수 있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대학 내에서 자체 정원조정을 할 때도 갈등의 여지가 있다. 이번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안에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총 입학정원 범위 내에서 정원을 자체 조정할 때 활용되는 교원확보율 기준을 폐지하도록 했다.
애초에 대학설립·운영규정 완화가 첨단학과에 한해 이뤄지는 데다 대학 내 자체 조정 길까지 열어두면서 기초학문 등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첨단학과 중심으로만 규제 완화가 얘기되다 보니 기초학문 같은 경우는 계속 소외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 충분히 반발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일각의 우려가 타당하다면서도 대학도 사회 수요에 따라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첨단분야만 규제 완화를 하다 보니 학문 균형 측면에서 일각의 우려가 타당하다고 본다”면서도 “사회수요가 변화하는데 대학 구조가 마냥 유지될 수는 없다고 본다. 또 기초학문과 보호학문 육성에 대해선 재정지원과 국립대 역할강화 등으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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