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세모녀’ 엄마는 암, 두 딸은 난치병… “살기 힘들다” 9장 유서, 아무도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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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업부도후 빚 남기고 숨져… 생활능력 있던 장남도 희귀병 사망
이달초 “병원비에 월세 늦어 죄송”
2년전 수원 이사뒤 전입신고 안해… 주소-거주지 달라 복지혜택 못받아
“정부, 끝까지 소재 파악했어야” 지적

현관문에 가스 검침원 메모  21일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 현관문 옆에 ‘연락주세요’라는 도시가스 검침원의 안내 메모가 붙어 있다. 채널A 캡처
현관문에 가스 검침원 메모 21일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 현관문 옆에 ‘연락주세요’라는 도시가스 검침원의 안내 메모가 붙어 있다. 채널A 캡처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다.”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에서 21일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A4 용지 9장 분량의 유서에 이 같은 취지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이들은 수년 동안 암과 난치병 등 건강문제 및 생활고와 씨름했지만 복지서비스는 전혀 받지 못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사회보장시스템이 개선됐지만, 이번에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 암과 난치병 투병…숨지기 직전 “죄송하다”

2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60대 어머니 A 씨는 난소암을 앓았고, 40대 두 딸은 각각 희귀난치병과 정신질환이 있어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에게 도움을 줄 친척이나 이웃 등은 없었다.

인근 주민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세 모녀가 살았다는데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A 씨의 남편 역시 사업 부도 후 빚만 남기고 수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경찰은 생활능력이 있던 큰아들이 약 3년 전 희귀병으로 사망한 후 생활고가 심각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세 모녀는 40m² 남짓한 방 2칸짜리 집에서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42만 원을 내고 살았다.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달 초에도 집주인에게 “병원비 문제로 월세 납부가 늦어질 수 있다. 죄송하다”며 연락했다고 한다. 집주인은 21일 오후 2시 50분경 “문이 잠긴 세입자 방에서 악취가 난다”고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방 안에서 숨진 세 모녀를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이 최소 열흘간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날이 무더워 부패가 심했다”며 “국과수 정밀감정을 통해 정확한 사인 등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 주소지와 거주지 달라 “복지서비스 비대상자 처리”

세 모녀는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세 모녀는 2011년부터 경기 화성시 기배동 지인 집에 주민등록을 했지만, 실제론 거주하지 않았다. 이 지인은 “사정이 딱해 A 씨 아들 부탁으로 주소를 우리 집에 뒀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20년 2월 현 거주지로 이사할 당시 전입신고도 안 했다. 수원과 화성에서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이력도 없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공과금 3개월 이상 체납 시 관할 구청에 연체 사실이 통보되도록 했다. 하지만 화성시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A 씨가) 16개월 동안 27만 원을 체납했다는 통보가 와서 이달 초 주소지를 방문했으나 집주인이 ‘집에 살지도 않고, 연락처도 모른다’고 해 복지시스템 비대상자로 처리했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행 복지제도의 한계는 신청을 해야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주소가 불분명한 경우 끝까지 소재를 파악해야 한다는 방침과 이를 위한 방법을 사업 지침에 담았다면 이번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수원 세모녀#숨진채 발견#난치병#생활고#복지서비스 못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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