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위험군’ 선정돼도, 절반은 복지혜택 못 받았다
대상자 52만명 중 27만명만 지원
기초생활 등 안정적 지원 3% 불과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통해 ‘위험군’으로 선정되더라도 절반가량은 아예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 차상위 지원 등 안정적인 공적 지원까지 받는 사람은 찾아낸 위험군 100명 가운데 3명에 그쳤다. 경기 수원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선 복지 사각지대 발견 후 지원을 더욱 두텁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단수, 단전, 건강보험료 체납 등 34개 기준에 의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은 52만39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 지원으로 이어진 경우는 27만1102명(51.8%)에 그쳤다. 특히 기초생활보장 등 빈곤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공적 지원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2.9%에 불과했다. 정부의 긴급복지 지원(1.2%)이나 복지 바우처(9.4%) 등 단기 혹은 일시 지원만 받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의원은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실적만 강조할 게 아니라 안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찾아내 지원하는 건수 자체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에 의해 지원받은 사람은 도입 첫해인 2015년(1만8318명) 이후 지난해(66만3872명)까지 매년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는 7월까지 27만 명에 그치며 연말까지 총 50만 명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수원 세 모녀’와 같이 복지 사각지대 시스템에 의해 대상자로 분류되더라도 소재 불명 등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올해 5월 조사에서만 1177명에 달했다. 이날 정부는 위치 파악이 안 되는 위기가구를 실종자와 마찬가지로 경찰력을 동원해 찾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올해 5월부터 두달간 조사 ‘고위험’ 21만 중 1177명 확인 못해… 다른 위기정보 포착전엔 조사 제외 코로나 감염 우려에 대면조사 감소… 방역업무에 동원돼 인력 부족도 “시스템 개선해 고위험군 집중관리… 긴급지원제도 신청 문턱도 낮춰야”
최근 경기 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처럼 복지 공무원이 행방을 파악하지 못한 취약계층이 최근 두 달에만 1200명 가까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복지 비(非)대상자로 분류돼 언제든 ‘제 2, 3의 수원 세 모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는 곳도 연락처도 모르는 ‘증발’ 1177명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올해 5월부터 두 달간 ‘제3차 복지 사각지대 발굴 확인조사’를 벌였다. 매년 6차례 시행되는 조사로, 복지 혜택이 절실한 빈곤층을 찾는 것이 목표다. 건강보험료 체납이나 단전, 단수 등 34종의 위기정보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544만 명 가운데 고위험군 20만5748명을 추려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이 실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 중 1177명은 주민등록 주소지에 살지 않았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당국은 이들을 연락 두절로 기록하고 ‘복지 비대상자’로 분류했다. 수원 세 모녀도 이달 3일 주민등록 주소지인 경기 화성시 기배동의 한 주택에 담당 공무원이 방문했을 때 연락 두절로 기록됐다. 수원 세 모녀처럼 복지 당국이 가진 정보만으로는 추적이 어려운 취약계층이 최소 1177명인 셈이다.
연락 두절 등으로 복지 비대상자가 되면 또 다른 위기정보가 포착되기 전에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조사하는 아동학대 의심 가정의 경우엔 담당자가 아이의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 재방문한다. 강원 원주시의 복지 공무원 A 씨는 “복지 사각지대의 경우 조사 대상자가 많고, 주민등록 주소지에 살지 않는 경우는 너무 흔해서 일일이 재방문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이후 대면 조사 어려워져
일선 공무원들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감염 우려 탓에 우편이나 전화 등 비대면 방식의 조사를 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방배동 모자 사건’(2020년 12월)이 대표적 예다. 당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발달장애인 아들과 어머니가 숨진 지 다섯 달 만에 발견됐다. 관할 행정복지센터는 이들의 면담을 전화로 진행했고, 당국은 아들의 발달장애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충북 지역의 한 복지 공무원은 “글을 읽지 못하거나 귀가 어두운 어르신에게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 복지 제도를 안내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방문도 어렵고 긴 대화는 더욱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 등의 업무에 복지 공무원들이 대거 투입된 영향도 크다. 전국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 인력은 올 6월 말 기준 총 1만2736명이지만 상당수 인원이 코로나19 재택치료 안내나 긴급생활비 지원 등 다른 업무를 해야 했다.
○ 발굴 시스템 개선하고 긴급복지 문턱 낮춰야
한정된 복지 인력을 생존 위기에 처한 고위험군에 집중 투입하려면 발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 건강보험료 체납 외에는 해당하는 위기 정보가 없었다는 이유로 정부가 처음 경기 화성시에 제공한 고위험군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2020년 4월 아들(자매의 오빠)이, 11월 남편이 숨진 점을 감안하면 이들 모녀를 일찍이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재방문 대상에 포함시킬 여지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각 부처와 행정기관 사이에 있는 위기정보 공유를 가로막는 칸막이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의 사망 등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월 125만 원(3인 기준)을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신청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올 4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낡은 한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창신동 모자’처럼 복지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취약계층은 스스로 복지 서비스를 다시 신청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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