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나 일자리의 수도권 집중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권의 정치적인 성향을 불문하고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핵심적인 국토 정책으로 꼽고, 적잖은 예산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수도권으로의 인구와 일자리 집중은 심화되고 있어 논란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나 보건, 교육 등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수요가 높은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과 같은 문화기반시설은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공연 건수나 매출액 등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도 커지면서 서울과 충북 등 일부 지역의 평균 기대수명은 2.2년 이상 차이가 발생했다.
국토연구원은 정기간행물 ‘균형발전 모니터링 & 이슈 브리프’ 최근호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 ‘지역간 삶의 질 격차:문화·보건·교육’을 펴냈다.
● 문화시설 매출액 86%가 수도권에서 발생
24일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기반시설은 2021년 기준으로 2939개로 집계됐다. 2014년(2373개)보다 20% 이상 늘어났다. 연평균 3% 정도 증가한 셈이다.
유형별로는 국공립도서관(1176개)이 전체의 40%를 차지했고, 박물관(900개) 미술관(271개) 문예회관(261개) 지방문화원(230개) 문화의집(101개)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2014년과 비교하면 미술관(증가율·42.6%)과 국공립도서관(35.8%)의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반면 지방문화원(0.4%)은 거의 제자리였고, 이용도가 높지 않은 문화의집(-12.9%)은 오히려 줄었다.
이같은 문화시설의 수는 지역별 차이도 크지 않았다. 수도권의 비중이 2014년 35.7%에서 2021년에 37.0%로 30%대 중반을 유지했다. 인구 100만 명 당 문화기반시설 수도 제주 강원 전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 대부분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수도권에는 미술관(39.1%)과 도서관(45.3%)이, 비수도권에는 문화의집(84.2%)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문제는 문화기반시설을 운영할 전문예술법인단체가 서울에 24.1%가 위치하는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또 공연 건수(62.0%)와 매출액(86.0%)도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 서울과 충북의 기대수명 2.2년 차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5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기대수명(80.5년)보다 3년 이상 길다. 기대수명은 0세 출생아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로, 평균수명으로도 불린다.
기대수명도 수도권(83.9년)과 비 수도권(83.1년) 지역의 격차는 0.8년으로 비교적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도 별로 보면 상황은 달랐다. 특히 서울과 충북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가장 긴 서울은 84.8년이었지만 충북은 경북과 함께 82.6년으로 가장 짧았다. 두 지역 간 차이는 2.2년이나 됐다.
응급환자 사망률에서도 두 지역의 차이는 컸다. 2020년 기준 응급실 이용인구 1만 명 당 도착 전 사망자 수가 서울은 16명으로 전국 평균(26명)을 밑돌았다. 반면 충북(80명)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는 의료 인프라 차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시도별 인구 10만 명 의료인력 수를 보면 2021년 기준 서울은 1056명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충북(549명)은 서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세종(423명)에 이어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의료시설 접근성도 서울(3분)과 충북(27분)은 큰 차이를 보였다.
● 보육기관 접근성, 서울 16분 vs 강원 1시간 29분
영유아를 위한 국공립 보육기관 수는 2010년 203.7개에서 2021년 425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문제는 밀집도이다. 서울의 경우 보유기관이 평균 1.17km 정도 떨어져 도보로 평균 16분 정도면 닿을 수 있었다.
반면 강원은 6.66km에 달해 무려 89분(1시간 29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보유기관의 접근성은 서울 부산(28분) 광주(29분) 등 특별시 및 광역시와 강원을 필두로 경북(75분) 충북(62분) 등 도 지역이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연구원은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화·보건·보육시설의 지역 간 격차는 양적으로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지만, 접근성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며 “지역주민이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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