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100주년기념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의 구호와 함께 ‘2022 희망의 인문학’ 수료식에 참석한 수강생 80여 명이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졌다.
희망의 인문학은 노숙인과 홀몸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다. 5월부터 4개월 동안 강의를 성실히 수강한 수료생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번졌다. 수료식에선 최우수상과 장려상 등 우수 수강생에 대한 수상도 이뤄졌다.
○ 철학·역사부터 심리학까지 ‘희망의 인문학’
서울시는 이날 10년 만에 다시 개설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마치고 수료식을 진행했다. 수료식에 참석한 이들을 포함해 모두 303명(기본과정 219명, 심화과정 84명)이 수료증을 받았다. 참여자 384명 중 79%가 강의를 완주한 것이다.
희망의 인문학은 과거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08년 시작돼 2012년까지 진행되며 약 4000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2013년 보건복지부 노숙인 지원 사업에 인문학 강좌가 포함되면서 강의가 중단됐는데, 오 시장이 부활시킨 것이다. 수료식에 참석한 오 시장은 “밥도 잠자리도 중요하지만 책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10년 전 했던 걸 다시 시작하게 됐다”며 “기대 이상의 변화가 생겨나는 걸 지켜봤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문학을 통해 취약계층의 자존감을 회복시키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자립 의지를 키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 바람도 쐬고 마음의 양식도 채워
이번 희망의 인문학 강의는 ‘기본과정’(40시간)과 ‘심화과정’(32시간)으로 구성됐다. 기본과정은 서울시립대 강사진이 각 시설로 찾아가 강의를 진행했고, 기본과정을 수료해야 들을 수 있는 심화과정은 수강생들이 대학 캠퍼스에 출석해 수업을 들었다. 심화과정 수강생들은 대학생들과 함께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수료식에서도 서울시립대 졸업생 가운을 걸쳤다.
수강생들은 4개월 동안 철학, 역사, 심리, 문학,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었다. 즉흥 연극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는데, 어떤 곳에서 내 삶이 요동쳤는지 ‘터닝포인트’를 짚어봤다고 한다.
심화과정을 수료한 최모 씨(78)는 수업에서 ‘그때 그 사람이 있었지’라는 글을 써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릴 적 성경을 가르쳐 주셨던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쓴 글이라고 했다. 2005년 이혼 후 자활근로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최 씨는 “강의를 통해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며 “지금은 클래식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서울시가 예술 강의도 많이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수료생 A 씨는 “노숙인 시설에만 있으면 답답한데 강의를 들으며 바람도 쐬고 좋은 강의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시는 우수 수료자에게 내년 희망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보조강사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또 모든 수료자에게 내년 노숙인 공공일자리 사업에서 우선 채용 자격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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