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은호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윤 교수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등록 장애인 중에는 유일한 교수이지요. 그를 인터뷰한 것은 드라마를 계기로 현실에서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인기가 ‘재미있고 훈훈했던 좋은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만 저는 가장 먼저 국립국어원이 자폐와 관련된 용어를 자폐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꾸거나 순화시키면 어떨까 합니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우리가 얼마나 자폐성 장애에 대해 무관심했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죠.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자폐는 병이 아닙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국제표준인 ‘세계표준질병 사인 분류(ICD)’에도 ‘자폐성 장애(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유일한 공식용어로 쓰고 있다고 하는 군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폐증(自閉症)’으로 돼있고, 관련 용어들의 설명도 거의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자폐성’은 ‘자기 자신 속에 틀어박혀 현실에서 도피하는 상태’, ‘자폐성 경향’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자기 가운데에 파묻혀 주위로부터 고립되는 경향’ 이런 식으로요. 장애는 병이 아닙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병자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독 우리사회는 자폐당사자들을 포함한 발달장애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신조어, 중세 한국어와 근대 한국어의 고어, 방언, 외래어로 인정되지 않은 외국어까지 약 110만 개가 넘는 표제어가 수록돼있습니다. 여러분은 ‘샤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말샘에 따르면 ‘사랑’의 평안북도 지방 방언이라네요. 우리말샘에는 ‘샤랑트강’이란 생전 처음 듣는 강도 등재돼있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작은 강 이름이더군요. 그런데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자폐당사자’란 말은 없습니다. 당연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지요.
말과 글은 그 사회가 특정 대상을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올바른 인식 없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잘못된 인식은 자폐당사자들이 장애인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자폐 진단 기준에 아이큐(IQ) 테스트는 없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먼저 IQ테스트를 한 뒤에 IQ가 높으면 자폐 진단을 잘 안 해준다는 거지요. 윤 교수 본인이 겪은 일입니다. 아마도 자폐성 장애를 일종의 ‘저능아’로 치부하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인지 자폐당사자들의 경우 장애인정을 받기 위해 실제보다 더 장애가 심한 것처럼 과잉 행동을 하게 되는 슬픈 현실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장애를 가진 것도 서러운데 장애인정을 받기 위해 상태가 더 심한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국내에 장애인으로 등록한 자폐당사자는 3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른 장애와 달리 자폐성 장애는 자폐진단을 받아도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어쩌면 자폐성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드라마가 가져온 자폐성 장애에 대한 관심을 그저 재미있는 작품 하나 본 걸로 끝낸다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