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배상 차별’ 논란…“특별법 제정해야” 목소리 커질듯

  • 뉴시스
  • 입력 2022년 8월 31일 11시 10분


대법원이 박정희정부 시절 ‘긴급조치 9호’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가운데, 판례 변경 전 이미 패소가 확정된 피해자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로 특별법 제정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날 긴급조치 9호 피해자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9호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인정된다는 취지로, ‘정치적 책임’만 진다는 이전 판례가 뒤집힌 것이다.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5년 5월13일 시행됐으며,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규정이었다. 이번 사건 피해자들은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수사·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전합은 2013년 긴급조치에 대해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등을 심각하게 제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3부(당시 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015년 3월26일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긴급조치를 발동한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의 권리에 대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2013년 대법 전합은 긴급조치가 위법·무효라고 판단한 것이고, 2015년 국가배상 소송 상고심은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를 국가 과실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 판례를 따라 일부 국가배상 사건의 패소가 확정됐다.

법조계에서는 긴급조치 9호에 따른 수사·재판을 원인으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최소 대법원에 24건, 하급심에 9건이 계류 중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긴급조치는 1호와 4호로 인해 수사·재판을 받은 이들도 있기 때문에 이를 합치면 수십건이 계류 중인 것으로 보인다. 쟁점이 동일한 사건들은 이번 전합 판례에 따라 원고 승소 취지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패소가 확정된 피해자들은 국가에게서 배상을 받을 방법이 요원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합 판례는 소급되지 않기 때문에 패소가 확정된 이들은 소송을 다시 내더라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피해자단체들은 피해자 혹은 가족 193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패소 판결을 확정받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 피해자 숫자(약 1000여명으로 추산)를 감안하면 패소 판결을 확정받은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판례 변경 후 헌법재판소에 재판 취소를 구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헌재 결정례는 위헌으로 결정한 사건의 취소를 구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이 역시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렇기에 피해자 단체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후부터 일괄 해결을 위한 특별법 논의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2012년에는 피해자 보상 혹은 유죄 판결을 모두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특별법이 3건 발의되기도 헸다. 이 법안들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20년에도 긴급조치 피해자들 보상 등을 담당할 위원회 설치를 담은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소관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있다. 피해자들은 전날 대법 판결을 통해 배상 차별 문제가 생겼으니 특별법 제정도 속도를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긴급조치를 비롯한 판결들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협상 추진 전략 문건에 등장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이 사건들의 재심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특별법을 2018년 발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