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초속 44m(시속 158k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부는 ‘매우 강’ 강도로 6일 오전 경남에 상륙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국내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강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힌남노의 영향으로 제주와 남해안에는 400mm가 넘는 비가 내리고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40∼60m(시속 144∼216k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4일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5일 오전 9시 제주 서귀포 남서쪽 약 460km 해상까지 북상한다. 4일까지 ‘매우 강’이었던 힌남노는 이 시기 최대 풍속이 초속 54m(시속 194km) 이상인 ‘초강력’ 태풍으로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태풍의 강도는 최대 풍속에 따라 ‘일반-중-강-매우 강-초강력’ 5단계로 나뉜다. 초강력 태풍은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힌남노는 이후 ‘매우 강’ 상태로 6일 오전 8시경 경남 통영과 거제 부근에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강’ 단계 역시 사람이나 커다란 돌이 날아갈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분다. 기상청 관계자는 “(힌남노 경로에) 변동성이 있다. 현재 예측 경로보다 더 서쪽으로 진행해 국내 영향이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상륙 직후 6일 오전 9시경 힌남노 중심기압은 ‘역대급’인 950hPa(헥토파스칼)로 예상된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강력하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피해를 준 1959년 ‘사라’와 2003년 ‘매미’의 중심기압은 각각 951.5hPa, 954hPa이었다.
힌남노가 상륙하면 서울 등 수도권 북서부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이 ‘강풍 반경’에 포함될 예정이다. 강풍 반경은 바람이 초속 15m(시속 54km) 이상 부는 구역이다.
힌남노는 폭우도 몰고 온다. 5, 6일 전국적으로 100∼30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특히 제주와 남해안, 경상권 동해안 등에는 400mm가 넘는 비가 예상된다.
힌남노가 해수면 높이가 높아지는 시점에 국내에 접근하면서 폭풍해일 대비도 필요하다. 제주와 경남 남해안, 부산, 울산 바닷가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만조시간대에 너울과 함께 최대 10m의 높은 파도가 일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해안가 저지대가 침수될 우려가 있다.
행정안전부는 4일 오후 4시 30분을 기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대응 수위를 1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하고, 위기경보 수준은 ‘주의’에서 ‘심각’으로 높였다. 중대본 대응 수위를 1단계에서 3단계로 곧바로 높인 건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제주 곳곳 벌써 침수피해 속출… 남부 400mm 넘는 물폭탄 예고
역대 최강 태풍 오늘 제주 거쳐 북상
내일 새벽~오전이 최대 고비, 부산경남 “원격수업” 울산 “전면휴업” 오늘 오후부터 제주 항공편 결항… 통영-거제엔 어선 6000여척 대피 尹대통령 “한발 앞선 대응” 당부
4일 낮 12시 반, 제주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 제주도 전역이 11호 태풍 ‘힌남노’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이날 중문 해변으로 가는 길목 노점상은 모두 철수한 상태였다. 해산물을 파는 ‘해녀의 집’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관계자들은 비를 맞으며 도로 주변 공사현장 가림막과 입간판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그러나 이미 서귀포 바다는 3∼4m 높이의 집채만 한 파도를 쏟아내며 대포주상절리 일대의 바위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30분가량 지나자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하수가 역류하며 일대 도로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해안에서 사진을 찍던 관광객이 파도를 뒤집어쓰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간당 7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대정읍에선 침수 피해가 30여 건 접수되는 등 이날 제주 전역에서 태풍이 도착하기도 전에 피해가 속출했다. 5일 오후부터는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도 대부분 결항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농민 김모 씨(52)는 “한라봉 등 열매가 커지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다. 비닐하우스 등을 꼼꼼하게 점검했지만 어찌 될지는 하늘만이 알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남부 지역 힌남노 직격… 6일 오전 최대 고비
힌남노가 6일 오전 8시경 경남 통영과 거제 인근으로 상륙해 부산과 울산을 지날 것으로 전망되자 남부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6일 새벽∼오전을 최대 고비로 보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기상청은 4∼6일 부산·울산·경남 등 남해안에 많게는 400mm 이상, 시간당 100mm의 폭우가 내릴 것으로 전망해 침수 피해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2016년 태풍 ‘차바’로 큰 피해를 봤던 부산 해운대구의 대처는 전시를 방불케 했다. 해운대구는 마린시티 등 바다와 가까운 상가 150여 곳에 대피를 권고했고, 업주들은 모래주머니를 가게 입구에 쌓아 올린 뒤 의자 등 집기를 줄로 단단히 묶는 등 자체 대응에 나섰다. 과거 태풍 때 해운대 초고층 밀집지역은 빌딩 사이로 강한 바람이 부는 ‘빌딩풍’으로 유리창이 대량 파손된 바 있어 창틀을 테이프로 고정하는 주민도 많았다. 부산 동구는 저지대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30여 명이 생필품을 챙겨 인근 숙박시설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3년 태풍 ‘매미’의 악몽을 기억하는 경남도도 종일 대비에 분주했다. 태풍 상륙 지점으로 지목된 통영과 거제는 양식장 1500여 곳의 줄을 단단히 묶으며 강풍 피해에 대비했고, 어선 6000여 척을 대피시켰다.
호남 지역 농어민들도 대비에 나섰다. 전남 강진과 진도의 전복 양식장 100여 곳은 수심 2∼3m 바다에 있던 그물망을 5∼6m까지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어민 황종기 씨(57)는 “지난해 태풍이 동반한 폭우로 바다의 염도가 떨어져 전복 폐사 피해를 입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남부 초중고교 “임시 휴업이나 원격 수업”
남부 지역은 초중고교 상당수가 임시 휴업이나 원격 수업을 결정했다. 4일 교육부와 부산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경남도 및 부산시의 모든 학교는 6일 전면 원격 수업을 하고, 울산 내 모든 학교는 6일 전면 휴업을 결정했다. 제주도 내 유치원 및 초중고교 310곳 중 74%는 5일 휴업하거나 원격 수업을 한다.
교육부는 수도권 등 다른 지역도 태풍에 대한 경계를 높일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5일에는 정상 등교하고 기상 상황을 살핀 후 6일 원격 수업 전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대응 수위를 1단계에서 3단계로 사상 최초로 두 단계 격상하며 민간 분야의 6일 출근시간을 조정할 것을 적극 권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에서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국민 걱정이 더 크실 것”이라며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정부가 한발 앞서 더 강하고 완벽하게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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