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 강타]
힌남노, 제주 거쳐 북상 피해 속출
오늘 아침 남해안 상륙 영남 관통
태풍 반경 430km… 전국에 영향
반경이 430km에 이르는 초대형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면서 상륙 전인 5일부터 제주와 남부 지방에 피해가 속출했다.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이날 서울 등 수도권에도 하루 150mm 넘는 비가 내렸다. 태풍의 ‘본진’은 6일 오전 경남 남해안에 상륙한다. 역대 가장 강한 위력으로 남부 지방을 관통할 것으로 보여 큰 피해가 우려된다.
5일 제주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 동안 최대 600mm 넘는 비가 내렸다. 일부 산지에서는 시간당 최대 62.5mm의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주택 8채, 상가 3채 등이 침수됐다. 제주 등 전국 10개 공항에서 항공기 56편이 결항됐고, 여객선 99척의 발이 묶였다.
이날 제주 산지에서는 태풍 도착 전임에도 초속 41.9m(시속 151km) 강풍이 관측됐다. ‘기차가 탈선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남 신안 가거도와 강원 양양 설악산에서도 각각 초속 40.8m(시속 147km), 32.4m(시속 117km)의 풍속이 기록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6일 0시경 제주에서 60km 떨어진 바다를 지나 오전 5∼6시경 경남 남해안에 상륙한다. 도시별로 태풍의 중심에 가까워져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시기는 통영 오전 5시, 거제 오전 6시, 부산·울산 오전 7시다.
규모와 강도 면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태풍이라 한반도 전역이 영향권에 든다. 힌남노의 반경은 410∼430km로, 서울∼부산 간 거리(390km)보다 길고 대형 태풍이었던 매미(반경 400km 전후)보다 크다. 이 때문에 남부 지방에 초속 40∼60m(시속 144∼216km)의 강풍이 부는 것은 물론 충청과 경기 남부까지도 초속 15∼25m(시속 54∼90km)의 강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상륙 시 예상 중심기압도 950hPa(헥토파스칼)로 매우 낮다.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된 ‘사라’(1959년), ‘매미’(2003년)도 힌남노보다는 약했다.
기상청은 “일부 지역에서는 힌남노가 영향을 미치는 시점이 만조 시기와 겹칠 것으로 보여 파도와 하천 범람의 위험성도 크다”고 경고했다. 이날 부산 남·동·영도구, 경북 상주 등 111가구 135명은 지자체가 마련한 임시 주거시설로 대피했다.
서울에도 많은 비가 내리며 5일 오후 9시 51분부터 서울 잠수교가 전면 통제됐다. 한강홍수통제소는 이날 오후 5시 한탄강 지류인 경기 포천시 영중면 영평천 영평교 지점에 홍수주의보를 내렸다. 서울·부산·경남·경북·대구·울산·제주 유치원과 초중학교는 6일 휴업 혹은 원격수업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4시간 철야 비상대기를 했다.
한라산 초속 40m 강풍-시간당 62mm 폭우… “15년전 ‘나리’ 악몽”
제주, 어선 전복 등 피해 잇따라 뿌리째 뽑힌 야자수 주택지붕 덮쳐… 차량 침수돼 운전자 가까스로 탈출 바위에 부딪힌 파도 30m 치솟기도… 서귀포 성산읍 등 888가구 정전
5일 11호 태풍 ‘힌남노’가 제주를 강타하면서 강풍에 야자수가 뿌리째 뽑히거나 정박 중이던 어선이 전복되고, 차량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서귀포에서는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30m 이상 치솟는 모습도 목격됐다. 일부 지역에선 운전 중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고, 성인이 똑바로 걷기 힘들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 가로수가 주택 덮치고, 차량 과수원 침수
이날 제주에선 한라산 백록담에 순간 최대 초속 40m(시속 144km)가 넘는 바람이 부는 등 강풍이 종일 이어졌다. 낮 12시 7분경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에선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수가 강풍에 넘어지면서 주택 지붕을 덮쳤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귀포시 중문동에서도 가로수가 쓰러졌고, 제주시 이도동 제주제일중 인근 도로에서는 중앙분리대가 넘어졌다.
제주지역 항·포구에는 전날부터 약 2000척의 각종 선박이 긴급 대피했다. 그러나 강풍으로 파도가 거세지면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포구에 정박 중이던 소형 어선 1척이 전복됐다. 서귀포시 서홍동에서는 새섬에 부딪친 파도가 바로 앞 새연교 주탑(높이 45m)의 3분의 2 지점까지 솟구쳐 오르는 모습도 목격됐다.
전날부터 이어진 호우로 침수 피해도 이어졌다. 이날 제주시 아라동을 운행하던 한 차량이 물에 잠겨 운전자가 간신히 탈출했다. 제주시 조천읍에선 과수원이 침수됐으며, 서귀포시 신효동에서는 도로에 하수가 역류했다. 서귀포시 대정읍에선 육상으로 옮긴 보트가 강풍에 도로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후 8시까지 인명구조 요청 7건을 비롯해 총 106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등에서 888가구가 정전되기도 했다.
○ 말랐던 하천에 폭포수처럼 물 흘러
이날 한라산 고지대부터 내려온 빗물은 제주시 지역의 중심 하천인 한천과 병문천 등을 통해 거세게 흘러내렸다. 한천 제2동산교 주변 공사장에는 즉석 폭포가 만들어지며 물이 쏟아졌다. 화산 폭발 등으로 형성된 제주지역 하천은 지하로 물이 침투하기 쉽기 때문에 평소는 건천(乾川)이지만 이번처럼 큰비가 내리면 하천이 형성된다. 2007년 태풍 ‘나리’ 때도 하천이 주택가와 상가 등으로 범람하면서 제주시 지역에서만 12명이 숨졌다. 주민 김경자 씨(48)는 “태풍 나리 이후 저류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집중호우가 내릴 때마다 불안한 심정”이라고 했다.
저지대에 비해 보통 2배가량 많은 비가 내리는 한라산 고지대는 강풍과 호우가 동반되면서 5일에만 최대 640mm의 물폭탄이 쏟아졌다. 일부 산지의 경우 시간당 62.5mm의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강풍과 비로 한라산국립공원 폐쇄회로(CC)TV가 먹통이 될 정도였다.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 주변은 폭우로 주변 확인이 불가능했고, 정상인 백록담 CCTV도 강풍 등으로 작동이 중단됐다.
이날 제주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 등 310개교 가운데 91%인 282개교가 원격수업으로 진행했으며 나머지 28개교는 휴업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는 5일 밤이 고비”라며 “음식점 등 민간 다중이용시설의 휴업을 강력 권고드린다”고 했다. 실제로 상당수 업소가 문을 닫아 제주 및 서귀포 시내 번화가는 한적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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