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먹튀 넘어 속튀”…법무부, ICSID 판정문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6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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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선고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선고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판정을 내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6일 공개한 론스타 ISDS 사건 판정요지서에 따르면 ICSID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 측 일부 책임이 인정된 하나금융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 쟁점에 대해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점에 비춰 보면 단순히 '먹고 튀었다(Eat and Run)'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도 볼 수 있으나, 한국 금융당국 역시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보류하였기 때문에 양측 책임이 동일하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2011년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중재판정부는 "론스타는 이 판결 이후 금융위원회의 외환은행 주식매각명령에 따라 2012년 5월18일 이후에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지분을 더 이상 보유할 수 없게 됐고, 이는 금융당국이 매각가격 인하를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고 판단했다.

대신 중재판정부는 당시 한국 정부의 금융위원회가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이는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중재판정부는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 쟁점에 대해 "금융당국은 매각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승인 심사를 보류하는 'Wait and See' 정책을 취했고 이러한 행위는 정당한 정책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금융위의 매각가격 인하 노력과 관련해 하나금융 관계자와 론스타 관계자의 대화 등을 근거로 들면서 "가격 인하를 달성할 때까지 승인심사를 보류한 것은 금융당국의 규제권한을 자의적이고 악의로 행사한 것"이라고 한국 정부 측 책임을 물었다.

이에 따라 판정부는 인하된 매각 가격인 4억3300만 달러(약 5800억 원) 가운데 론스타 측의 과실을 50% 인정해 배상액을 절반인 2억1650만 달러로 결정했다. 당시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매각 지연에는 론스타에도 절반가량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재판정에 대해 취소신청 등 불복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비록 론스타의 청구액보다 실제 판정 금액이 많이 감액됐지만 중재판정부의 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합리적으로 주장할만한 취소 신청 사유를 검토 중이며, 이를 토대로 소송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중재판정부 판정에 취소를 신청할 수 있는 기한은 판정 이후 120일까지다. 중재규칙에 따르면 취소 신청은 △중재판정부가 명백히 권한을 이탈한 경우 △절차 규칙에서 정한 사항에 일탈한 경우 △판정에 이유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등에 가능하다. 한쪽에서만 취소를 신청해도 ICSID 산하에 취소위원회가 구성된다. 취소위는 위원 3인으로 구성되며 서면·구술 심리를 거쳐 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취소위가 실제로 취소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1966년 ICSID가 출범한 이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취소신청 133건 가운데 20건(15%)만 전부 또는 일부 인용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판정 취소 비율을 10% 안팎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전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거듭 "제가 이 판정문을 여러 차례 읽었고, 저는 이것이 공개되는 것이 정부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5∼10년을 분석하면 10% 내외의 받아들여질 확률이 있다"며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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