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깨지고 원전도 멈춰…‘힌남노’ 할퀸 남부지방 피해 속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6일 18시 57분


코멘트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한 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해안도로에 거친 파도가 치고 있다. 뉴스1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한 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해안도로에 거친 파도가 치고 있다. 뉴스1
“이틀 동안 유리에 합판까지 덧대며 피해를 줄이려고 했는데도 속절없이 당했네요.”

6일 오후 1시경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서 가게(횟집) 안팎을 청소하던 김영이 씨(65)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가게 바닥에는 뜯겨진 합판 조각이 널부러졌고, 큰 파도가 몰고 온 진흙과 자갈이 가게 주변을 뒤덮었다. 어항이 깨지면서 물밖으로 나와 죽은 횟감도 바닥에 깔려 있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했다. 김 씨는 “2016년 태풍 ‘차바’가 왔을 때 너무 피해가 커서 이번에 대비를 한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복구비가 적어도 수백만 원이 들텐데 막막하다”고 했다.

강풍과 집중호우를 동반한 11호 태풍 ‘힌남노’는 6일 제주를 거쳐 남부지방을 차례로 관통하면서 곳곳에 크고 작은 피해를 남겼다. 해안가의 상가와 시설물, 수확기를 앞둔 농산물 등에 피해가 집중됐다.

● 가게 유리창 깨지고, 신고리원전 1호기 멈춰
이날 새벽 최대 초속 37m(시속 133㎞)의 매서운 강풍이 몰아친 부산은 해안과 인접한 지역의 피해가 컸다. 만조시간대와 태풍의 상륙 시간이 겹치면서 10m 높이의 폭풍 해일이 바닷가 쪽 도로와 건물을 덮쳤다. 송도해수욕장 해안도로 100여 m의 아스팔트 일부가 부서졌고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상가도 유리창이 깨졌다.

해운대 마린시티 해안도로에는 도로 바닥에 고정돼 있던 경계석이 파도에 휩쓸려와 인근 상가 유리와 벽면 등에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상가 10여 곳의 유리가 깨지고 내부 시설물이 물에 잠겼다. 마린시티의 경우 2016년 태풍 ‘차바’가 북상했을 때도 인근 상가 등이 잠기는 침수 피해를 입었다. 마린시티에서 커피숍을 하는 김모 씨(52)는 “태풍이 얼마나 셌는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대리석과 화단 조경석이 가게 안까지 밀려와 유리가 박살났다”며 한 숨을 쉬었다.

강풍으로 전력설비가 고장나면서 부산 기장군에 있는 신고리원전 발전기도 멈췄다.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본부에 따르면 6일 오전 6시경 신고리 1호기(가압경수로형, 100만kW급)가 터빈 발전기의 전력 설비 이상으로 정지했다. 고리본부는 “정확한 원인을 찾고 있지만 강풍과 집중호우로 전력 설비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터빈 원자로는 현재 25%로 출력을 낮춰 안정 상태를 유지하며 가동하고 있고, 방사선 등의 영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아파트·호텔·상가 정전…농·어업 피해 극심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들었던 제주에선 정전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 밤사이 불어ㅤ닥친 강풍으로 전깃줄이 끊어지면서 한림읍과 대정읍 1만6900여 가구 전기공급이 중단됐다. 6일 오전이 돼서야 복구 작업이 이뤄졌지만 아파트와 일부 숙박시설 등에는 한동안 어둠에 휩싸였다. 음식점과 편의점 등에는 냉장고가 꺼져 낭패를 보기도 했다. 비상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은 양식장에서는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당근 마늘 등을 재배하는 농경지 280㏊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경남과 광주·전남에서는 농작물과 양식장의 피해가 잇따랐다.

경남지역에는 벼가 넘어지거나 침수되는 등 농작물 862.4ha와 시설물 5.3ha의 피해가 발생했다. 전남에서는 배, 무화과, 사과 등 과수 578㏊와 벼 364㏊가 피해를 봤다. 배 과수원을 하는 위성환 씨(31·나주시)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수확을 앞둔 과일이 떨어져 피해가 컸다”고 했다.

완도의 전복·넙치 양식장과 여수 굴 양식장 등에서도 4억 원 가량의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도 관계자는 “2019년 태풍 ‘링링’때 보다 피해규모는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인 중이다”고 말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