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개혁-개방정책 추진했던 고르바초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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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사진)이 지난달 30일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로 상징되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던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입니다.

고르바초프는 1931년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청소년기 부모와 같이 집단농장에서 콤바인을 운전하다, 1955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열성 공산당원이 되었습니다. 1961년 청년공산주의자연맹의 지역 서기장을 시작으로 1978년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농업서기, 2년 뒤엔 정치국원으로 올라섭니다.

그는 요즘 말로 ‘신세대’ 공산당원이었나 봅니다. 1982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 밑에서 해외를 방문했을 때 이전 지도자들과 다르게 세련된 옷차림과 말투,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 서구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985년 54세의 젊은 나이로 소련 최고 권력인 공산당 서기장이 되자, 그는 소련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혁을 시도합니다. 당시 소련은 국가의 가장 큰 수입원인 유가가 하락하고 9년 동안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미국과의 오랜 군비 경쟁으로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체험한 민중의 불만이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고르바초프는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을 내세워 정치적 민주화를 허용하고, 소련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소련 연방 내 각 지역에서 민족주의가 강해진 것입니다.

1986년 12월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으로 소련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어 1989년 6월 폴란드에서는 자유선거를 통해 기존의 공산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집권합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독이 무너지면서 동유럽 사회주의가 해체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는 공산 국가들 간 사회주의 연맹을 결속시키던 ‘브레즈네프 독트린’ 포기를 선언합니다. 그해 12월 그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반세기 동안 계속된 냉전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선언에 합의했습니다. 이 회담이 몰타 회담입니다. 이 공로로 그는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개방 정책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경제 개혁 실패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 쿠데타가 벌어집니다. 시민들과 함께 쿠데타 세력을 물리친 옐친이 집권하면서 그는 급격히 권력 기반을 잃었습니다. 결국 소련마저 1991년 12월 해체됩니다.

새로운 사회주의를 실험했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은 결국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현재 KGB 고위 간부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 1인 독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고르바초프#페레스트로이카#소련#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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