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니트족’ 돕겠다는 지원사업에 주부·대학생이…취지 맞는지 의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9일 1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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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박모 씨(29)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한 지방자치단체의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했다. 구직을 단념한 이른바 ‘니트족’ 청년들의 경제활동과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지자체에서 민간 위탁기관을 통해 운영하는 사업이다. 참여자가 취업역량 강화, 자신감 고취 등을 위한 40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지원금 2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박 씨는 수업을 듣기 시작한 이후에야 ‘6개월 이내에 취업한 적이 없어야 한다’는 자격요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황한 그가 이에 대해 문의하자 위탁기관 담당자는 “모집인원의 30%는 지자체 자율로 뽑을 수 있어서 (취업이력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박 씨는 “수업을 같이 들은 사람들 중에는 나뿐만 아니라 공무원 수험생, 주부 등 구직단념자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며 “수업 내용은 좋았지만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가 의문”이라고 했다.

● 니트족 찾기 어려워 주부, 대학생도 모집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DB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DB


19일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청년도전지원사업에는 전국 28개 지자체가 참여해 청년 7000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 3월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돼 처음 시작됐다. 만 18~34세 청년 가운데 최근 6개월 내 취업해서 일했거나 직업훈련 등에 참여한 적이 없는 사람이 대상이다.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할 예정이거나 최근 5년 내 퇴소한 자립 준비 청년과 지자체가 자체 요건에 따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청년도 신청할 수 있다. 많은 지자체에서 만 39세까지 청년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 사업도 만 39세까지 지원할 수 있는 지역이 많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일부 지자체는 구직 단념 청년을 찾기 어려워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주부나 대학생까지 모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충남 천안시의 위탁기관에서는 청년도전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육아맘&파파 클래스’를 신설했다. 육아로 일을 쉬고 있는 청년 부모들을 모집하기 위해서다. 대구 수성구·달서구, 광주, 강원 춘천시 등에서는 최근 청년도전지원사업 참여자를 모집하는 포스터에 ‘대학생과 휴학생도 신청할 수 있다’고 표기했다. 주부나 대학생을 모집하는 것이 사업 규정에 위배되는 건 아니지만 구직 단념 청년을 돕는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위탁기관 담당자들은 “구직 단념 청년만으로는 모집인원을 채울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광주의 한 기관 관계자는 “진짜 니트족들은 이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며 “최근에 워낙 모집이 잘 안돼서 대학생과 휴학생도 가능하도록 요건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천안시 기관 담당자는 “참여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데다, 육아로 일을 쉬는 청년들도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육아맘·파파 전용 클래스를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 지원금 추가 확대에 “부작용 커질 것”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지원사업은 목표 인원이 5000명이었지만 3200명만 참여했다. 참여자 모집이 어렵다보니 일부 기관들은 정부 지원금 20만 원에 더해 지자체 예산으로 추가 지원금을 주거나 모집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천안시 모집기관은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지역사랑상품권 10만 원까지 지원금 30만 원을 준다. 또 해당 사업을 친구에게 소개해 같이 참여하면 무료 치킨 쿠폰을 주는 이벤트를 벌였다. 대구 수성구 위탁기관도 최근 모집 포스터에서 ‘40시간 무료 수강 후 현금 20만 원, 선물세트, 추가 혜택’을 준다고 홍보했다. 이 외에도 대부분 기관들이 40시간 수업만 들으면 현금 20만 원을 준다는 점을 내세워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이 사업을 확대 개편해 모집인원을 8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가운데 5000명에게는 5개월의 과정을 이수하면 300만 원의 ‘청년 도약준비금’을 준다. 고용부 관계자는 “일부 미흡한 점이 있지만 구직 단념 청년과 자립 준비 청년을 지원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며 “기존 사업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해서 내년에는 더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금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재정만 낭비할 뿐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금도 운영기관에서 구직 단념 청년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현금 지원을 대폭 늘리면 이로 인한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청년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대신 바우처를 통해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는 등 필요한 도움을 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 300만 원을 지원하면 재정만 낭비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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